송승헌 맥킨지 한국사무소 시니어파트너

세계경제포럼(WEF)은 이달 초 중국 다롄에서 열린 하계 다보스 포럼에서 포스코 등 기업 10곳을 '등대공장(Lighthouse Factory)'으로 선정했다. 등대공장이란 등대처럼 제조업의 미래를 이끄는 공장을 말한다. 작년부터 매년 한두 차례 선정한다. WEF는 맥킨지와 함께 지난 2년간 전 세계 수천 개 공장을 대상으로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을 적극 활용해 혁신적인 성과 개선을 만들어낸 공장을 찾아냈다. 그 결과, 세 차례에 걸쳐 총 26곳의 등대공장을 선정했다. 한국 기업이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포스코는 AI 기술을 활용해 압연 하중 자동 배분 등 스마트 공장 플랫폼을 구축한 점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등대공장 중에는 제조 방식뿐 아니라 회사 전체의 가치사슬(value chain)을 디지털화해 전반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을 이룬 사례도 있다. 중국 상하이자동차그룹(SAIC) 막수스(Maxus)의 경우, 온라인으로 고객별 맞춤형 주문을 받고, 이 정보를 기반으로 구매, 생산, 재고, 물류를 자동 관리해 별도의 시간·비용 증대 없이 대규모 맞춤 생산 체제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동종 업계 경쟁 기업들 대비 25% 이상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을 적용해 생산량을 최대 3배, 생산성은 2.6배 끌어올리고, 재고와 고객 대응 시간을 90%까지 절감한 등대공장도 있다. 임금 인상, 소비자들의 맞춤화 요구, 원자재 값 및 환율 변동성 증대, 국가 간 무역 분쟁, 환경과 노동 관련 규제 심화 등 불확실한 기업 환경 속에서 미래형 기술 혁신이 제조업에 위기 극복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1980년 세계 25위에 불과하던 우리나라 제조업 생산량은 중국, 미국, 일본, 독일 다음의 세계 다섯째 규모로 성장했다. 중국과 함께 제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 이상 되는 몇 안 되는 국가이기도 하다. 국가 경제의 턴어라운드를 제조업 혁신, 제조업 부흥 없이는 상상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문제는 끓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점점 힘들어지는 경제 환경 속에서 성장과 생산성이 모두 정체된 한국의 제조업에 지금 필요한 것은 '점진적 개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현저한 변화, 전면적 혁신이다. 하지만 막상 디지털 혁신을 시도하고 있는 기업 중 70% 이상이 수년째 파일럿(시범 운용 프로젝트)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파일럿 연옥(煉獄)'이라고 부를 정도다. 단기 비용에 대한 걱정, 효과에 대한 확신 부족 등으로 소심한 파일럿만 계속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 일본 등 공장의 자동화 수준이 이미 높은 국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설마 더 좋아질까' 하는 불확신이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의 국가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몇 년 뒤 미국, 일본, 독일 등 선도국과 중국, 인도 등 추격국 사이에 낀 것을 한탄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낙오자 신세가 될까 걱정이다. 한국 제조업은 이미 훌륭한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 위에 혁신의 엔진을 얹는 게 필요하다. 이 혁신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운영·조직·비즈니스 모델 혁신과 통합돼 계획적이면서도 과감하게 추진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