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팀 K리그'와 유벤투스의 친선 경기(3대3 무승부). 후반 25분부터 6만5000여명 관중이 "호날두"를 외치기 시작했다. 유벤투스의 수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4·포르투갈)가 그라운드에서 화려한 플레이나 팬 서비스를 선보여서가 아니었다. '호날두의 경기'로 알려졌던 친선전에 호날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초 프로축구연맹과 대회 주최사인 '더페스타'는 이번 친선전 계약에 '호날두의 45분 이상 출전' 조항이 들어갔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기가 끝날 때까지 그라운드를 누비는 호날두의 땀방울을 볼 수 없었다. 24일 인터밀란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한 호날두는 이날 계약 조항대로 45분 출전이 예상됐지만 끝내 그라운드 잔디를 밟지 않았다.
전반전만 해도 호날두가 카메라에 비치면 국내 팬들은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애정을 표현했다. 그러나 후반전이 시작된 후 시간이 흘러가는데도 호날두가 계속 벤치를 지키자 분위기가 바뀌어갔다. 그가 전광판 화면에 비칠 때마다 야유가 터져 나왔다. 경기 막판 일부 관중은 호날두에 대한 반감의 표현으로 그의 라이벌인 "메시!"를 연호했다.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뜨는 팬도 많았다. 호날두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25만~40만원을 내고 프리미엄존 티켓을 구매한 팬들은 분통이 터질 만했다. 이번 행사 초청비로 40억원(추정)을 챙긴 유벤투스 구단은 호날두의 결장에 대한 위약금을 지불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매진된 입장권 가격을 모두 합하면 약 65억원에 이른다.
오후 8시에 예정돼 있던 킥오프가 1시간이나 늦춰지는 '촌극'도 벌어졌다. 경기장에 들어찬 팬들은 텅 빈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선수들을 기다렸다. 유벤투스 선수단을 태우고 중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태풍 때문에 1시간 30분 연착된 가운데, 주관사가 예정돼 있던 일정을 무리하게 강행했기 때문이었다. 1급 선수들을 데려다 놓고 '아마추어 수준'의 행사 운영을 한 것이다.
세종시에서 아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신모(42)씨는 "오후 11시 반 기차를 놓친 것도 화나지만 호날두의 플레이를 보지 못한 아들을 달래야 하는 게 정말 슬프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재환(30)씨는 "호날두 보려고 오래 기다려서 왔는데 못 봐 실망스럽다. 그라운드에 나와 인사라도 해주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주관사가 위약금을 받는다고 해도 정작 그를 보기 위해 궂은 날씨도 무릅썼던 관중한테 돌아오는 게 뭐냐"고 말했다.
경기에 앞서 오후 4시 30분 서울 용산구의 한 호텔에서 예정됐던 호날두의 사인회도 취소돼 아쉬움만 남겼다. 주관사 관계자는 "주전 선수들 친필 사인을 받아서 (나중에) 택배로 꼭 보내드리겠다"고 수습했지만 애초에 무리한 일정을 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3시간 넘게 호텔에서 기다렸던 200여 명 팬의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주관사는 호날두의 사인회 취소 이유에 대해 "(호날두가)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거짓 해명이었다. 마우리시오 사리 유벤투스 감독에 따르면 호날두의 결장이 결정된 건 경기 전날인 25일이었다. 사리 감독은 경기 후 "호날두의 근육 상태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오늘 경기에 뛰지 않기로 어제 결정했다"고 말했다. 호날두는 경기 후 믹스트존을 빠져나오면서 "(45분을 뛰기로 한) 계약 조건에 대해 알고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은 채 눈을 흘기며 버스에 올랐다.
그동안 호날두는 뛰어난 축구 실력뿐만 아니라 팬들을 챙기는 마음이 각별해 '인성도 좋은 선수'로 인식됐다. 하지만 이번 친선전에 보여준 성의 없는 태도에 국내 팬들은 분노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엔 경기장 쓰레기통에 호날두 유니폼을 버린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