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숨진 한 무학여고 1학년생의 아버지는 사고 10주년 때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눈물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8학군 욕심에 이사 갔다가 그렇게 됐어요. 똑똑한 내 딸 위해 그놈의 8학군으로 이사 간 건데, 거주 기간이 짧아 배정 못 받고 성수대교 건너 통학한 거예요." '8학군 러시'는 1993년 최고조에 달했다. 강남·서초구에서 최소 3년 8개월을 살아야 8학군 고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명칭조차 사라졌던 8학군이 부활하고 있다고 한다. 강남·서초구 부동산에 매매나 전세 문의가 급증하고 가격도 오른다. 서울시내 자사고가 줄줄이 지정 취소되면서 학부모들이 다시 8학군을 찾는다. 중학생 아이를 둔 한 후배는 최근 용산구에서 서초구로 이사하려다가 고민 중이다. 지난달 알아봤던 집 전셋값이 그새 5000만원 올랐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주 아파트 값은 서울 강남구가 0.27% 오르며 전국 1위를 기록했다.
▶학군 제도는 1974년 고교 평준화 정책과 함께 시작됐다. 서울시청 반경 3㎞ 이내 학교들을 '공동학군'으로 묶고 1학군은 도봉·성북, 2학군 동대문 식으로 서울을 여섯 학군으로 나눴다. 당시 서울 인문계 고교 87곳 중 46곳이 공동학군에 밀집돼 있었다. 같은 시기 강남이 본격 개발되면서 76년 경기고를 필두로 강북 명문고들이 강남으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77년 학군을 10개로 늘리면서 8학군(강남)과 9학군(강동)이 생겨났다. 강북 명문고들이 8학군에 몰려, 도심에 있던 명문고들을 8학군으로 옮겨놓은 형국이 됐다.
▶새로 지은 명문고들은 시설도 좋았고 신축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들이 강남판 입시 경쟁을 벌이면서 학부모들을 빨아들였다. 70년대까지 위장 전입은 아파트 당첨을 노린 경우가 많았으나, 80년대부터 8학군 입학용으로 목적이 바뀔 정도였다. 고위 공직자 청문회 때 위장 전입이 빠지지 않는 것은 대부분 이런 이유다.
▶지금은 학군에 숫자를 붙이지 않는다. 98년 총 11학군으로 개편하고 구 이름을 딴 교육지원청이 학교를 관할한다. 80년대 시작된 8학군 과열은 1997년이 돼서야 최소 거주 기간 제도를 없앨 만큼 누그러졌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는데 과학고와 외고에 우수한 중학생이 많이 진학한 것도 그중 하나다. 지금 이 정부는 자사고를 줄줄이 없애고 아예 모두 일반고로 만들자고 한다. 그랬더니 8학군이 되살아나고 있다. 백년대계 없이 풍선 여기저기 눌러봐야 그때마다 다른 데 부풀어 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