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보다 340배 단단하고 나일론보다 4배 뛰어난 신축성, 300도가 넘는 온도에도 견뎌내는 내열성까지 두루 갖춘 '꿈의 섬유'. 바로 거미줄이다.
이 거미줄 성분을 섬유로 가공하는 기술은 NASA(미 항공우주국)와 미군, 글로벌 화학 기업 듀폰까지 저마다 개발·상용화에 뛰어들었다가 번번이 문턱에서 고배를 마신 대상이다.
그런데 2013년 일본의 한 벤처 기업이 세계 최초로 인공 거미줄 대량생산 기술을 확보했다. 2007년 일본 북서부 작은 시골 마을인 야마가타현에 설립된 스파이버(Spiber)가 주인공이다.
스파이버는 이후 추가 연구 공정을 거쳐 오는 11월 노스페이스와 손잡고 인공 거미줄을 소재로 만든 겨울 외투 '문 파카(Moon Parka)'를 시장에 선보인다. 2015년 시제품을 완성하고 결점 보완을 거쳐 탄생한 제품이다.
'문 파카'말고도 스파이버가 개발한 다른 단백질 신소재 '브루드 프로테인(Brewed Protein)'을 활용한 티셔츠도 노스페이스 브랜드를 달고 이보다 앞선 8월에 시판된다. 이 티셔츠는 100% 천연소재로 만들었고, 식물에서 추출한 셀룰로스와 브루드 프로테인을 각각 82.5%, 17.5% 섞었다. 기존 티셔츠보다 촉감이 부드럽고 가볍다는 평가다.
인공 거미줄 상용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스파이버는 지난 4월에만 미쓰비시UFJ은행을 비롯한 굵직한 투자기관에서 65억엔을 수혈받았고, 지금까지 누적 투자 유치액이 300억엔을 넘어섰다. 스파이버는 이제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으로도 분류되면서 관심이 한층 더 집중되고 있다.
게이오대 대학원생 시절 개발·창업
스파이버 창업자는 게이오대학원 박사과정 학생이던 세키야마 가즈히데(関山和秀). 그는 게이오대 석사과정을 졸업할 무렵인 2006년 인공 거미줄 개발에 성공했다. 이를 직접 상용화하기 위해 스파이버를 세웠고, 이 인공 거미줄에 '쿠모노스(QMONOS·일본어로 거미집을 의미)'라는 이름을 붙였다. 2015년에는 쿠모노스로만 제작한 파란색 드레스를 선보였다.
쿠모노스는 천연 거미줄의 주성분인 피브론 단백질의 강도와 신축성을 그대로 재현한 인공 거미줄이다. 의류업계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화학섬유나 탄소섬유가 합성 과정에서 다량의 석유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쿠모노스는 순수 단백질을 발효 공법으로 배양해 만들고, 버린 후에도 자연 분해되기 때문에 환경 친화적이란 평가다. 세키야마 대표는 "석유를 원료로 하지 않는 환경 친화적인 소재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성능 면에서도 강점을 지닌다. 자동차와 항공기 업체들은 연비를 개선하기 위해 탄소섬유강화수지 등을 구조물이나 부품에 넣어 몸체를 가볍게 하는 데 주력해 왔다. 인공 거미줄은 이보다 강도와 신축성은 뛰어나면서 무게는 가볍다.
세키야마 대표는 스파이버 창업 후 정년퇴직한 베테랑 기술자들로 개발팀을 구축했다. 일본 기업들은 이미 인공 거미줄 생산 기술의 열쇠를 쥔 발효와 섬유 기술에서 세계 최고 수준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특허 자료를 바탕으로 기업 목록을 조사해 담당자에게 일일이 연락을 돌려 대기업 출신 기술자 20여명을 영입했고, 이들이 현재 스파이버 연구·개발팀 핵심 인력으로 자리 잡았다.
교와발효공업 연구소장 출신인 개발팀 요코오 요시하루 고문은 스파이버 전 직원이 20명에 불과하던 2010년 합류했다. 그는 "현역 시절 우수했던 기술자들은 은퇴해서도 젊은 사람들에게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면서 "오랫동안 현장에서 얻은 일류 기술 지식을 썩히지 않고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공 거미줄 파카 시판… 車 부품 생산
스파이버는 2013년 세계 최초로 인공 거미줄 대량생산을 뒷받침하는 가공 기술을 일찍이 확보했다. 세키야마 대표는 스파이버 설립 후에 왜 그동안 인공 거미줄 대량생산이 실패했는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광범위한 조사와 후속 연구를 통해 기존 연구 관행을 뒤집고 천연 거미줄과 미묘하게 다른 아미노산 배열을 지닌 유전자를 하나씩 만들어 미생물에 집어넣고 효모를 사용해 배양하는 방법을 택하면서 실마리를 찾았다.
또 단순 단백질 추출에 그치지 않고 가공 공정까지 직접 진행해 실용화에 걸리는 기간을 대폭 단축했다는 것도 성과다.
스파이버는 단백질 소재로 실과 직물을 짠 후 섬유를 가공해 옷을 만들기까지 모든 공정을 직접 맡는다.
2012년 국립법인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 등 지원을 받아 시제품 연구시설 '프로토타이핑 스튜디오'를 마련했고, 현재 연간 20t 이상 시제품 생산이 가능한 상태다. 2015년에는 6600㎡ 규모 연구시설도 문을 열었다.
쿠모노스 사용 분야는 아직 의류 분야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쿠모노스는 섬유뿐만 아니라 가공 방법에 따라 필름과 겔(gel), 스펀지, 파우더, 나노섬유 등 다양한 형태로 가공할 수 있다.
그래서 스포츠용품뿐 아니라 의료와 건축, 타이어와 가구, 로봇과 우주여행 장비에까지 그 활용 폭이 무궁무진하다.
스파이버는 지난 2012년 자동차 부품업체 코지마프레스공업과 제휴 계약을 맺었고, 2년 뒤 쿠모노스를 사용한 부품을 생산·판매하기 위한 합병회사 엑스파이버(Xpiber)를 설립했다.
조만간 본격적인 자동차 관련 제품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2016년에는 도요타 렉서스에 쿠모노스를 사용해 만든 운전석 시트를 장착했고, 이 모델을 파리모터쇼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쿠모노스 카시트는 충격 흡수력이 뛰어나고 신축성이 좋아 장기간 운전에도 피로감이 덜하다는 설명이다.
단백질 캐시미어 등 신소재도 발굴
스파이버는 인공 거미줄 쿠모노스에 머물지 않고 단백질에서 추출한 다양한 신소재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단백질 캐시미어 소재는 가벼우면서도 보온성이 뛰어나고 부드러운 감촉까지 갖춰 고급 보온 섬유로 각광받는 캐시미어를 대체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재 인공 거미줄 등 단백질 신소재 시장 규모는 2조달러, 자동차 응용 분야는 2조5000억달러에 이른다는 추정이다.
스파이버는 올해 아웃도어 의류와 티셔츠 판매를 시작으로 점점 인공 거미줄 활용도를 높일 계획이다.
현재 태국에서 대규모 공장을 건설 중인데, 2021년부터 인공 거미줄 등 단백질 신소재를 생산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거미줄이 방탄조끼 등에 사용되는 고기능 섬유인 케블라보다 10배, 탄소섬유보다는 15배의 강도를 지녔다는 새로운 연구 사실이 공개되면서 스파이버 가치는 나날이 높아가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