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예부터 '밥심'을 강조했다. 힘을 내 활동하려면 밥부터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는 믿음을 서로 공유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밥상을 분석해보면 영양소 가운데 탄수화물 비율이 60%가 넘는다. 끼니마다 밥, 면, 떡 등 탄수화물을 빼놓지 않고 챙겨 먹는다.

탄수화물도 많이 먹으면 탈이 난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나트륨이나 지방은 '경계대상' 취급을 받지만, 탄수화물은 과다 섭취에 따른 위험성이 과소평가되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 식이요법이라고 하면 대부분 저염식을 떠올린다. 또 삼겹살이나 소 등심 등 지방이 많은 육류를 적게 섭취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탄수화물을 적당하게 섭취하는 것에 신경 써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탄수화물 과다 섭취, 만성질환 발병률 높여

출처: 국립농업과학원, 코카콜라, 국가표준식품성분표

최근 의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탄수화물을 과다섭취하면 만성질환의 발병률이 높아진다. 당뇨를 비롯해 비만, 고지혈증, 고혈압 등 질환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015년 한국영양학회 발표로는 당뇨, 고혈압, 대사증후군을 앓는 환자는 건강한 사람보다 탄수화물 섭취 비율이 뚜렷하게 높았다.

이미 외국에서는 탄수화물 과다 섭취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지방이나 나트륨보다 탄수화물 섭취 제한에 초점을 맞춘 식이요법이 등장했다. 대중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설탕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일본에서도 탄수화물 비중을 낮춘 '저탄수' '저당질' 식품들이 빠르게 시장에 안착하고 있다.

◇핵심은 밥, 현미도 백미와 크게 다르지 않아

한국인의 경우 주로 '밥'을 통해 탄수화물을 섭취한다. 특히 흰 쌀밥은 탄수화물 덩어리나 다름없다. 100g 당 당질 함량 비율이 75~80g에 달한다. 밥 한 공기(210g)에는 약 70g의 탄수화물이 들어 있다. 이는 각설탕 20개, 콜라 3캔에 함유된 탄수화물 양과 같다. 군것질을 따로 하지 않아도 백미를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에는 백미 대신 현미 같은 잡곡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큰 차이는 없다. 현미의 100g당 당질 함량은 70~75g으로 백미보다 살짝 낮은 수준이다. 현미가 백미보다 건강할 것이라 믿고 식사량을 늘리면 오히려 탄수화물을 더 많이 섭취하게 될 수도 있다. 여기에 잡곡밥은 특유의 향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고 식감이 거칠어 백미보다 먹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백미보다 소화가 잘되지 않아 장년층 이상은 잡곡밥을 꺼리기도 한다.

◇저당밥솥, 탄수화물 섭취량 줄이는 데 도움

한국처럼 쌀밥이 주식인 일본은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일찍부터 시작됐다. 당뇨병이 '국민병'에 등극한 일본은 몇 해 전부터 탄수화물과 당의 섭취를 줄일 수 있는 식품, 제품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곤약을 활용한 밥과 면이 등장했고, 설탕을 대체할 수 있는 감미료들이 편의점까지 진출했다.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관련 도서들도 꾸준히 발간된다. 가전시장에도 탄수화물 저감기능을 탑재한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탄수화물을 줄이는 '저당밥솥'이 개발돼 한 해 동안 수 만개가 팔려나갔다. 탄수화물로 인한 비만 등 질병에 대한 걱정은 덜면서, 쌀밥의 맛과 식감은 그대로 즐기려는 현대인의 니즈에 들어맞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저당밥솥 때문에 잡곡 소비가 준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지난달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최초로 저당밥솥이 출시돼 눈길을 끌었다. 솥의 구조를 바꿔 밥 짓는 과정에서 탄수화물을 바깥으로 배출하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쌀의 탄수화물(전분)은 조리할 때 물에 녹아나는데, 이 밥물은 배출하고 별도의 물탱크에서 새 물을 끌어올려 밥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탄수화물이 최대 40%까지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밥에 포함된 탄수화물의 양을 줄임으로써 열량도 감소한다는 장점도 있다.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계획하고 있거나 탄수화물 섭취를 줄여 건강을 지키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 것으로 전망된다.

밥맛·식감은 그대로, 탄수화물 줄이는 저당밥솥 나와

식이요법 연구기업 닥터키친은 지난달 국내 최초로 탄수화물 저감밥솥 '빼당빼당 밥솥'〈사진〉을 출시했다.

닥터키친 제공

'당을 빼다'는 의미를 담은 '빼당빼당 밥솥'은 밥 짓는 과정에서 나오는 탄수화물을 줄이는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다. 취사 전 쌀을 씻으면 쌀뜨물이 나온다. 이 쌀뜨물은 쌀에 있는 전분이 물에 녹으면서 생기는데, 취사 과정에서도 계속 용출된다. '빼당빼당 밥솥'은 솥의 이중구조를 활용해 이 쌀뜨물을 하부의 물탱크로 배출시킨다. 이후 별도의 물탱크에서 새로운 물을 끌어올려 2차 취사를 진행, 밥을 완성한다. 쌀에서 녹아나온 탄수화물을 중간에 배출함으로써 탄수화물을 줄이는 방식이다. 국제공인검사기관 SGS에서 분석한 결과 '빼당빼당 밥솥'의 탄수화물 저감 비율은 최대 40%에 달했다.

'빼당빼당 밥솥'의 핵심은 밥의 맛과 식감, 찰기는 그대로 유지하며 최대한 탄수화물만 줄이는 저감 기능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식단에 대한 전문적인 노하우와 지식을 쌓아온 식이요법 업체가 개발한 저당밥솥이기에 소비자의 기호와 욕구에 잘 부합할 수 있을 것"이라 평가했다. 실제로 닥터키친이 당뇨 환자 50명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전체의 90%는 일반 백미밥과 빼당빼당 밥솥으로 지은 밥의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다고 답했다.

닥터키친은 식단조절이 필요하거나 당뇨 등 만성질환 환자를 위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설탕을 줄인 커피, 저탄수화물 빵, 밀가루를 전혀 넣지 않고 생선 살로만 만든 면과 떡 등의 상품을 선보였다. 밥의 당질을 줄이는 데 주력해 지난해   6월부터는 잡곡으로 만든 즉석밥 '닥터키친 밥'도 판매하고 있다

닥터키친 관계자는 "수년간 만성질환 환자나 식단조절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맞춤 식단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핵심은 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밥의 맛은 유지하면서도 탄수화물을 줄여 소비자를 만족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