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조사, 결혼이주여성 10명중 4명 '폭행경험'
'신원보증' 체류 여부 남편 손에…권력으로 작용
전문가들 "제도 개선 필요해" 지역공동체 도움 절실

2007년 대구,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 A(당시 33세)씨가 임신한 상태로, 갇혀있던 아파트 9층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다 떨어져 사망했다. 남편의 폭력을 피해 탈출하려다 발생한 사고였다. 그로부터 13년이 흘렀지만 도돌이표처럼 상황은 반복됐다. 최근 전북 영암에서는 베트남 이주여성이 남편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됐다.

13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 따르면 2007년 이후 남편의 폭력으로 숨진 이주여성은 언론에 보도된 것만 21명이다. 이주여성들은 한국어도 서툴고, 사회적 연결망이 없어 외부로 피해사실을 알리기가 어렵다. 또 체류 여부를 사실상 남편이 결정하는 현행 제도는 남편에게는 ‘권력'을, 여성에게는 ‘종속'을 의미한다. 한국에 남고 싶으면 폭행을 참아야만하는 것이다.

◇10명 중 4명 맞고산다는데...말 못하는 이주여성들

베트남 출신 히엔(가명·24)은 2014년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건너왔다. 16살이 많은 남편은 술을 마시면 히엔에 손을 댔다. 처음에는 가벼운 따귀 한 두대였던 폭력은, 히엔이 공장에 취직하면서 점차 심해졌다. 폭행 뒤에는 "억울하면 베트남으로 돌아가라"는 협박이 이어졌다. 결국 남편의 폭행에 유산을 하고나서야 히엔은 이주여성센터의 도움으로 쉼터로 피신할 수 있었다.

지난 7일 페이스북에 공개된 베트남 아내 폭행사건 동영상.

국가인권위원회가 결혼이주여성 920명을 상대로 진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387명(42.1%)의 결혼이주여성이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중 38.0%(147명)는 가정에서 폭력 위협을 당했고, 19.9%(77명)는 흉기로 협박당하기까지 했다.

이주여성들은 가정폭력을 당해도 언어 차이와 사회적 연결망의 부재로 신고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더 큰 문제는 체류자격이나 국적 취득이 사실상 한국인 배우자에게 종속된 현행 법제도다. 한국인 남편은 여성의 체류에 있어 여전히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 여성은 폭행을 당해도 추방을 걱정해 신고를 할 수 없게된다.

인권위는 2011년 결혼이주 여성이 국내에서 체류 연장 허가를 받을 때 한국인 배우자가 ‘위장결혼 방지’ 취지로 신원보증서를 제출할 것을 명시한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을 삭제해야한다며, 법무부에 의견을 냈다. 법무부는 이를 받아들여 신원보증서 제출 규정을 폐지했다.

하지만 결혼이주여성이 국적을 취득하기 전 한국에 체류하기 위해 비자 연장이나 영주권 신청 등을 할 때는 한국인 남편과의 동행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남편이 동행하지 않으면 체류자격 연장이 어렵다"면서 "여성이 한국 국적을 취득한 다음에도 본인 가족의 출입국에 남편의 인허가가 필요할 정도로 종속된 상태"라고 했다.

이때문에 이주여성은 가정폭력을 당해도 피해 신고를 꺼린다. 아이를 잃고 본국으로 쫓겨날 수 있다는 우려가 가장 크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이주여성의 10명 중 4명(42.1%)이 가정폭력을 경험했지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그중 36%에 불과했다. 이혼이나 별거를 고려했다는 비율은 8.3%에 그쳤다. 이 중 절반은 ‘자녀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 걱정되어’ 결혼생활을 유지했다고 답했다.

◇다문화가정 30만 시대, 지역 공동체 도움 절실해

전문가들은 폭행 피해를 당하는 이주여성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 체류 여부가 남편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는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사회적 네트워크가 부족한 이주여성이 ‘본인들의 말’로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공동체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8일 오전 베트남 아내를 폭행한 혐의 등을 받는 남편 A(36)씨가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결혼이주여성들의 지역별 다문화지원센터 등록을 의무화하는 식이다. 이주여성들은 언어장벽 등을 이유로 지인을 제외한다면 일상적인 도움을 받기는 힘든 상황이다. 지원센터같은 곳에 다니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사회적인 연결망에서도 배제된다. 이번 폭행사건의 피해여성도 다문화지원센터에 등록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영암 다문화지원센터 관계자는 "아내가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바라는 남편의 적극적인 동의가 없다면 여성들이 센터에 다니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여성이 직접 등록을 하지 않는다면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지원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결혼이주민을 위한 상담전화(1577-1366)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응답자도 22.5%였다. 폭력을 당하거나 갈 곳 없는 결혼이주민을 위한 쉼터를 '모른다'고 답한 여성은 27.6%였다.

전남이주여성인권센터 관계자는 "다문화가정이 30만 세대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무작정 국적을 주지말자고 반대하는 것보다는 이주여성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건강하게 적응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면서 "우리가 먼저 포용하지 않고, 이들이 계속 배척된다면 나중에 더 큰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