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규격의 야외 수구장에서 훈련하는 것도 생전 처음이에요. 아직도 태극 마크를 단 내 모습이 낯설어요."
한국 여자 수구 대표팀 이정은(16·인천 작전여고)은 12일 광주 남부대 수구장에서 2시간가량 수중 연습을 마친 뒤 수줍게 웃었다. 훈련을 마친 뒤 경기장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선수들 모습은 영락없는 10대 청소년이었다.
한국 여자 수구는 이 경기장에서 14일 헝가리와 광주세계수영선수권 조별 리그 B조 첫 경기를 치른다. 헝가리는 지난 2017년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 5위에 오른 강팀이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헝가리·캐나다·러시아와 함께 B조에 속했는데, 상대팀 모두 우승 후보로 꼽힌다. 반면 한국 여자 수구는 개최국 자격으로 사상 처음으로 출전했다.
대한수영연맹은 이번 세계선수권 수구 종목에 뛸 국가대표 13명을 지난 5월 26일 선발했다. 수구는 골키퍼 1명 포함 7명이 출전해 8분씩 4피리어드로 승부를 가린다. 교체 선수 6명 포함 팀당 엔트리는 13명이다.
대표팀에서 수구를 전문적으로 배운 선수는 한 명도 없다. 얼마 전에야 처음 수구를 처음 접한 경영 선수 출신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선 "명색이 개최국인데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창피만 당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대표팀은 대회에 앞서 경기체고 남자 수구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0대50으로 대패했다.
주장이자 맏언니인 오희지(23·전남수영연맹)는 "광주에 와보니 우리를 경계하는 팀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더 오기가 생겨 쉽게 질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총 13명 대표팀엔 여고생이 9명이나 있다. 이 중 수능을 앞둔 고3 학생만 6명이다. 여고생들은 오로지 세계선수권 출전을 목표로 '낮엔 공부, 오후엔 훈련' 일상을 쳇바퀴 돌 듯 반복했다. 지난달 2일부터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합숙 훈련을 해온 학생들은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1시간 정도 체력 훈련을 한 뒤 자율학습을 했다. 오전 공부 후엔 선수촌으로 돌아와 오후에 3~4시간 동안 수영장에서 전술 훈련에 매진했다. 대표팀은 하루에 8시간 넘게 수영장 물 밖을 나오지 않고 훈련에만 올인했다고 한다. 송예서(18·서울체육고)는 "광주에도 영어 단어책을 가져왔다. 훈련이 끝난 뒤 힘들지만 틈틈이 수능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달 동안 고된 훈련이 이어졌지만 선수들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대표팀은 한목소리로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다"고 말했다.
평영 선수 출신인 주장 오희지는 2017년 평영 50m 국내 랭킹 5위까지 올랐던 유망주다. 선수 꿈을 접고 지도자 공부를 하던 그는 수구대표팀 선발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이번 대회에서 골키퍼를 맡은 그는 연습 초기엔 선수들이 던진 공에 얼굴을 맞아 코뼈 골절을 당하기도 했다. 오희지는 "끝까지 싸우는 경기를 펼쳐서 대회가 끝나고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