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가 임차인에게 '아들이 장사해야 하니 건물을 비워 달라'고 했다면 임차인이 못 받게 된 권리금을 물어줘야 할까. 대법원이 그렇다고 판단했다. 주인의 이런 요구는 계약연장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임차인이 자기에게 권리금을 줄 새 임차인을 데려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주인은 임차인에게 배상금을 줘야 한다고 대법원은 밝혔다. 임차인의 권리금에 대한 건물주의 책임을 대폭 강화한 것이다.
세입자 한모씨는 2008년경부터 한 상가를 임차해 커피숍을 운영해 왔다. 2012년 이 상가를 매수한 박모씨와 임대차 기간을 2015년 11월까지, 보증금 7200만원에 월세 220만원으로 하는 내용으로 계약을 새로 했다. 계약 만료가 다 돼 가자 박씨는 한씨에게 '나가 달라'며 소송을 냈고 '2016년 11월 30일까지 건물을 비우라'는 판결이 확정됐다.
한씨는 권리금 6000만원을 주고 들어올 새 임차인을 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씨는 2016년 10월 초 한씨에게 "상가를 남에게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 아들이 여기서 커피숍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한씨는 권리금을 못 받게 된다. 한씨는 권리금을 물어내라고 소송을 냈다. 권리금은 특정 점포의 입지·시설적 가치를 인정해 새 임차인이 기존 임차인에게 주는 돈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에는 주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연장을 거부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면 권리금 상당의 손해배상을 하게 돼 있다. 일본은 권리금이 있지만 법에 명문화돼 있진 않다. 영국은 우리와 유사하다. 이번 사건에서 1심과 2심은 건물주의 손을 들어줬다. 임차인 한씨가 권리금을 부담할 새 임차인을 데려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주인 박씨에게 권리금 배상을 요구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대법원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1일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 갱신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시했다면 현 임차인이 새 임차인을 데려오지 않았더라도 (주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관련법은 주인이 임차인과의 계약 연장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로 월세 미납 등 제한적 내용만 담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주인이 "우리 가족이 직접 장사할 것"이라며 임대차 계약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사유'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