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중구 서울역 인근 고가 정원인 '서울로 7017'(이하 서울로)에서 시민들에게 무료로 양산을 빌려준 지 한 달 반 만에 양산 중 4분의 3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300개가 넘는다. 시민의 양심을 믿고 대여 서비스를 시작한 자전거 안전모, 우산, 장난감 등에 이어 공유 경제 실험이 또다시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텅 비어있는 양산 거치대 - 10일 오후 서울 중구 고가공원 '서울로 7017'의 양산 거치대가 텅 비어있다. 서울시는 지난 5월 시민들에게 무료로 양산을 빌려주는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한 달 반 만에 전체 양산의 4분의 3인 300여 개가 사라졌다.

시는 더위가 시작되는 지난 5월 말 서울로 곳곳에 양산 72개를 비치했다. 네 곳 지점에 거치대를 설치하고 한 곳당 18개씩 걸었다. 개당 4200원짜리다. 양산과 거치대 구입에 예산 320만원을 썼다. 그런데 양산을 가져가고 반납하지 않는 사례가 잇따랐다. 시 관계자는 "잠깐 쓰고 반납해야 하는데 집으로 가져가는 사람들이 다수"라며 "몰래 숨겨 갖고 가는 사람을 붙잡은 적도 여러 번"이라고 말했다. 시는 양산이 사라질 때마다 하나둘씩 갖다 채워 넣었다. 시행 한 달 반 만인 10일 점검해 보니 전체 400개 중 300여 개(75%)가 사라졌다. 시는 추가로 320만원을 더 들여 양산을 다시 채워 넣을 계획이다.

낮 최고기온이 32도까지 올라간 지난 8일 오후 서울로에 설치된 양산 거치대 4곳 중 3곳에는 양산이 한 개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동쪽 끄트머리 거치대에 남은 양산 두 개가 전부였다. 이날 서울로를 지나던 시민 김태현(38)씨는 "해가 너무 쨍쨍해 지나가는 거치대마다 양산이 있는지 확인했는데 없어서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곳을 지키던 서울로 보안관은 "사흘 전에 새로 꺼내다 놨는데 또 하루 만에 사라졌다"며 "아직 시민 의식이 낮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로 양산 같은 공유 경제 실패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따릉이 안전모, 책, 우산, 장난감 등 함께 나눠서 쓰자는 서비스가 일부 시민 때문에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지난해 5000만원을 들여 영등포구 여의도와 마포구 상암동에 안전모 2500개를 비치했다. 두 달간 시범 운영한 결과 27.4%가량이 분실됐다. 시 관계자는 "안전을 위해 비치했지만 없어지는 것도 많은 데다가 실제 착용률은 3.5%에 그쳐 운영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비슷한 서비스를 시작했던 경남 창원시는 총 1500개 중 900여 개가 분실돼 이번 달부터 서비스를 중단했다. 경기도 안산시는 지난해 11월 200개를 비치했지만 한 달 만에 전부 사라져 중단했다. 같은 시기에 사업을 시작한 세종시는 파손 및 분실된 건수가 391건에 달하자 안전교육을 수료한 시민에게만 한정적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서울 도봉구는 지난해 12월 버스정류장 10곳에 공유 우산 120개를 무료로 빌려주는 서비스를 시행했다. 우산에는 '사용 후 제자리에'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구 관계자는 "서비스 시작 3개월 만인 지난 3월에 모든 우산이 사라졌다"며 "우산꽂이가 쓰레기통이 돼 버려 씁쓸하다"고 말했다. 함께 쓰는 물품을 훼손된 상태로 돌려주는 경우도 있다. 2011년부터 장난감을 대여해주는 경기도 성남 시청아이사랑놀이터 관계자는 "아이들이 이로 물어뜯은 채로 반납하거나 태엽이 망가진 오르골을 반납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유 경제라는 긍정적인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민 의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부 시민들이 공유 서비스를 마치 무상 지원 정책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에 문제"라며 "사용자 확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