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숫기 없다’는 말이 있다. 반대로 ‘반죽이 좋다’는 말도 있다. ‘변죽이 좋다’ 고 잘못 쓰이기도 한다. 어쨌든 변죽 좋은 사람, 반죽 좋은 사람이란 아무 장소에서나 남들과 스스럼없이 섞이고 성미가 유들유들해서 노여움이나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 성격을 말한다. 반대로 숫기가 없거나 꽁 하는 외고집 스타일일때는 ‘좁쌀영감 같다’는 표현을 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성격일까
그런데 중요한 점은 다른 데 있다. 문 대통령은 어떤 성격인가 이걸 묻고 대답하기에 앞서 ‘대통령은 어떤 성격이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 아니 국민들은 대통령이 어떤 자세로 국내외 행사장에 임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은 것이다.
최근 한 유튜브 영상이 큰 화제가 됐다. ‘G20에서 대한민국이 사라졌다’는 제목의 동영상이었다. 문 대통령이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공동 세션 회의에 참석을 안 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을 확인해보니 행사 7건 중에 무려 4건이나 불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영상이 크게 퍼지자 청와대가 발끈하고 나섰다. ‘가짜 뉴스’라는 것이다.
청와대가 ‘가짜 뉴스’라고 하자 KBS도 거들고 나섰다. 대통령 불참에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면서 "다른 일정(양자 회담)이 있어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부대(附帶) 행사여서 청와대가 사전에 불참을 통보했다"고 했다. KBS는 절대 하지 말았어야 할 말까지 덧붙였다. "극우 성향 사이트나 일부 보수 성향의 인터넷 방송국들이 가짜 뉴스를 덧붙여 확산시키고 있다."
이런 말들은 다 틀렸다. 먼저 일정이 이어질 때 약간 겹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공동 행사 참석을 포기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부대 행사라 불참했다고 했는데 오히려 ‘정상 특별 이벤트’로 격상된 행사였다. 더구나 ‘여성 인권 포럼’ 행사였다. 그리고 KBS는 ‘보수 성향 인터넷 방송국이 가짜 뉴스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했는데, 일반화의 오류는 둘째 치고 KBS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는가 묻고 싶다.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한다.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와서, 우리도 이런 다자간 정상 회의를 여러 차례 취재해봐서 잘 안다. 모든 정상들이 다 참석하는 ‘공동 세션’이 있고, 또 한 도시에서 여러 나라 정상들이 모였으니만큼 가장 효율적으로 틈을 내서 ‘양자 회담’을 갖기도 한다. 이때 정상 회의를 주최한 나라의 사무국에서는 이런 회의들이 겹치지 않도록 철저한 시간표를 짠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다. 청와대와 KBS는 문 대통령이 양자 회담에 참석하느라 공동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문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했던 그 상대국 정상은 공동 행사에 참석했는지 알아봐야 한다. 참석했다면 상대국 정상은 왜, 어떻게 그 공동 행사에 참석했다는 말인가. 양자 회담을 했던 상대국 정상은 양해를 구하고 일찍 일어나 공동 행사장으로 갔고 문 대통령은 혼자 더 할 이야기가 있어서 양자 회담장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가.
양자 회담 시간과 공동 세션 시간이 일부 겹치기는 했지만 참석 가능한 세션도 있었다. 정상 회의를 주관하는 쪽에서는 이런 것을 다 세밀하게 조율해서 시간표를 짠다. 20개 가까운 나라 정상들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 모두들 양자 회담만 하고 절반 이상이 공동 세션에 불참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청와대가 거짓말을 했든, KBS가 헛다리 짚는 ‘팩트체크’를 했든, 근본적으로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대통령은 숫기가 없든, 변죽이 좋든, 개인적인 성격과는 아무 상관없이, 다자간 정상 회의에서 다른 나라 정상들과 깊이 있는 의견 교환을 해야 하고, 개인적인 신뢰를 쌓아야 한다. 숫기가 없는 사람이 오히려 더 깊은 있는 교류를 할 수도 있다.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 만나는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스타일은 아닌지 걱정이다. 아니면 혹시라도 외국 정상들 사이에서 여러 차례 소외되는 경험을 했거나, 그게 겹쳐서 외국 정상을 만나는 게 두려움으로 바뀐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G20 같은 다자간 정상 회의에서는 모두 모인 자리에서 얼굴을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정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문 대통령은 정말 모르는가. 문 대통령은 북한과 김정은을 두둔하는 발언이 아니면 아무 관심도 없는가. 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왜 그 자리에 갔는지 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