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가 시작되고 추가 보복으로 확산될 움직임을 보이자 정부가 뒤늦게 기업들을 불러 대책 협의에 나서고 있다.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이 삼성·현대차·SK 등의 총수·CEO를 만난 데 이어 오는 10일엔 문재인 대통령이 30대 그룹 총수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로 기업인을 부른 것은 취임 후 2년여 동안 두 번뿐인데, 무역 보복 문제가 터지자 급하게 세 번째 자리를 만들었다. 외교 협상으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고 애꿎은 기업들만 불러 모아 대책을 찾겠다고 한다.

대통령과 장관을 비롯한 각 부처가 기업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이 당연한 정부의 기본 역할이다. 그런데 그동안 정부가 보여온 일련의 반기업 정책과 대기업 적대 기조를 감안하면 갑작스럽게 봇물 터진 기업과의 대화가 돌연하고 어색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 정부가 기업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대기업 법인세를 올리고, 경영권을 위협하는 법안을 쏟아냈으며, 산업 안전을 이유로 툭하면 공장을 세울 수 있는 규제를 강행했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 경영에 개입하려 하고, 기업 수사와 조사, 압수 수색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과격 노조가 전국의 건설 현장을 마비시키고, 과도한 환경 논리에 밀려 제철소 고로(高爐)가 멈춰 설 지경이 됐는데도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일본이 우리의 약한 기술력을 겨냥해 보복을 가해 왔는데 오후 6시만 되면 연구자와 기술개발자를 강제 퇴근시키는 무리한 주 52시간 근로제도 밀어붙였다. 그렇게 기업의 기를 꺾고 산업 경쟁력을 훼손하는 자해 정책을 쏟아내놓고 이제 와서 기업들과 만나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한다. 대기업을 적폐로 몰아붙이더니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만나자고 한다.

일본의 무역 보복은 반년 전부터 예상됐던 일이고 진즉에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일본이 타깃 삼은 3대 소재는 이미 수출 통관이 중단됐다. 기업들이 백방으로 물량 확보에 나섰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거나 다른 품목으로 확대되면 반도체 생산은 치명상을 입게 된다. 경제성장률의 절반을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이 타격 입으면 경제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몇 년이 걸릴지조차 모를 '수입선 다변화'며 '소재·부품 국산화' 같은 한가한 얘기만 하고 있다.

일본의 무역 보복은 강제징용자 배상을 둘러싼 정부 간 갈등에서 빚어진 외교 이슈고, 해법도 정부 간 협의를 통해 찾아낼 수밖에 없다. 외교 채널은 가동되지 않고 막혀 있는데 기업인만 불러 회의를 갖는다고 무슨 해결책이 나올지 의문이다. 자칫 보여주기 '쇼'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반기업 기조로 치닫던 정부가 갑자기 기업과 소통·협력하겠다고 하니 진정성부터 의심받는다. 이제라도 대통령과 정부는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얼마나 처절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는지 현실에 눈을 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