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중고시장서 활개치는 '전자담배' 불법거래
니코틴 든 액상도 판매, 청소년 흡연의 '사각지대'
"해외 구매대행 방식이라 단속 안걸려. 학생도 OK"
정부 단속 강화한다지만 "일일이 막기엔 역부족"

"담전+액상 판매합니다...택배 가능, 강도조절 가능"

지난 5월 국내에 출시되면서 큰 관심을 끌었던 액상형 전자담배 ‘쥴(JUUL)’을 비롯해 전자담배들의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 불법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개인이 판매하는 중고기기와 액상은 물론 업자들이 새기기와 액상을 할인판매하는 통로로도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현행법상 담배와 니코틴 액상 등의 거래는 온라인 상에서 못하도록 돼 있다. 구매자의 신분과 거래 물품의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쥴이 출시될 때 가장 우려했던 것은 ‘청소년 흡연 문제’였다.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쥴’은 편의점 등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돼 있어 청소년들에게 무분별하게 노출된다는 문제가 미국 내에서도 문제가 됐었다. 출시 한달이 조금 지나자 우려했던 문제가 현실화 되고 있는 셈이다.

온라인 중고 거래 커뮤니티 등에 올라온 쥴 판매 게시글.

◇'담전' 등 은어쓰며 밀거래…"단속이 불법속도 못따라가"
실제 국내 최대 중고 거래 커뮤니티 사이트인 '중고나라'에서는 중고 전자담배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이달 들어 지난 6일 현재까지 쥴 관련 판매 게시글은 100여건에 달했다. 글 대부분이 쥴 충전기와 케이블을 판매한다는 글이었지만 쥴 기기와 액상을 판매하는 글도 있었다. 특히 개인이 쓰다가 내놓는 '중고'인 것처럼 가장해 새기기와 액상 세트를 할인 판매하는 업자들이 글도 여럿 보였다.

모바일 기반 중고거래 플랫폼인 번개장터도 사정은 마찬가지. 최근 올라온 쥴 판매글은 보통 3~4시간 내에 판매가 완료되거나 예약이 완료됐다. 쥴 뿐 아니라 KT&G의 ‘릴 베이퍼’, 아이코스 등 여러 종류의 전자담배들이 거래되고 있었다. 이처럼 온라인 상에서 전자담배의 불법거래가 성행하는 이유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나날이 발전해가는 밀거래 수법에 단속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온라인 중고 거래 커뮤니티 등에 올라온 쥴 판매 게시글.

우선 인터넷 중고시장에서는 전자담배를 줄어서 말하던 ‘전담’이라는 신조어가, 다시 한번 바뀌어 ‘담전’이라고 불린다. 게시판 등에서 검색할 때 담전이라는 키워드를 넣으면 ‘전자담배’, ‘전담’ 등으로 검색할 때보다 몇 배나 더 많은 글들을 찾아낼 수 있다.

특히 중고시장은 구매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절차가 없기 때문에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 입장에서 신뢰만 구축되면 가장 간단한 거래 방법이다. 보통 돈을 입금하면 택배로 보내주기 때문에 중간에 약속만 깨지지 않는다면 간편한 거래인 셈이다. 청소년들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중고나라’ 등 중고거래 플랫폼 운영회사에서는 구매자와 판매자의 신뢰도를 분석해 별표나 점수 등으로 알려주고, 실제 거래 실적도 찾아볼 수 있도록 해놨다. 또 거래 과정에서 돈을 떼먹는 사기 등의 범죄를 막기 위해 ‘안전거래’ 시스템도 갖춰놨다.

◇청소년 "중고나라에서 거래하면 깔끔"... 판매업자 "학생? 문제없다"
지난 5일 기자가 실제 중고나라에서 전자담배 기기와 액상 구매를 시도해 봤다. '새것같은 중고'라는 문구가 담긴 쥴 판매자에게 쪽지를 보내 중고인지, 얼마나 쓴 물건인지를 물었다. 몇 시간 뒤 돌아온 답변에는 "당연히 새제품이죠. 쪽지 잘 안보니 전화주세요"라는 답이 왔다.

전화를 걸었더니 대뜸 "학생이냐"는 질문부터 했다. "그렇다. 괜찮겠느냐"고 했더니 "아무 문제없어요. 미리 많이 많이 사 놓으세요"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다섯 세트를 한꺼번에 사면 액상을 덤으로 더 주겠다"며 "다만 절대 소문은 내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단속에) 걸리지 않느냐"고 물으니, 해외에서 구매대행 해주는 방식이어서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피우는 담배를 알려주면 니코틴 강도를 맞춰 주겠다"고도 했다.

(좌)이달 초 중고거래앱인 번개장터에 올라온 ‘쥴 액상' 판매글. 한 판매 업자와의 대화 일부를 재구성한 내용.

청소년들도 편의점이나 전자담배 판매점보다는 온라인 구매를 선호한다고 했다. 경기도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김모(18)군은 "누구나 온라인을 통하면 전자담배를 살 수 있다. 담배 피우는 친구들은 구매방법도 다 알고 있다"며 "인터넷에서 (전자담배를) 구매하는 방법이 깔끔하기 때문에 또래들은 온라인 구매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서울 모 고교에 2학년 최모(16)양도 "돈을 모아 한 친구가 인터넷에서 대표로 사서 나눠받은 적이 있다"며 "택배를 받을 곳이 없어서 직접 해보진 않았지만 거기(중고거래 사이트)가 더 싸고, 더 다양하다고 들었다"고 했다.

◇정부 "청소년 판매 막겠다"…단속 인원 턱없이 부족
지난달 5월 24일 쥴이 출시된 이후 보건복지부는 편의점 등 담배소매점에서 청소년에 대한 담배·전자담배 판매를 집중 점검·단속하고 있다. 교육 당국도 각 학교를 통해 학부모에게 신종담배의 모양과 특성을 알리는 안내문도 배포하도록 했다.

현행법상 니코틴 액상과 같은 유해 약물을 청소년에게 제공할 경우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담배사업법에도 같은 잘못을 저지르면 지자체는 담배소매인 지정 취소를 하도록 돼 있다. 또 담배를 우편거래 또는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다 적발되면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서울 용산구 한 편의점에서 직원이 쥴(Jull) 제품을 정리하고 있다.

중고나라 측은 자체 인원을 동원, 검색어 필터링 등을 통해 담배 거래 자체를 막겠다고 나섰다. 국가금연지원센터도 지난 5월 말부터 ‘인터넷 담배판매 감시단’을 꾸려 운용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단속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중고나라도, 금연지원센터도 인터넷 단속요원이 각각 5명, 10명 뿐이어서 일각에선 "단속 의지가 의심된다"는 말도 나온다. 하루 평균 온라인에 올라오는 게시글이 수천 개에 달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모든 게시글을 단속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가금연지원센터 관계자는 "온라인 단속반을 통해 꾸준히 단속하고 있지만 판매글을 삭제하는 시정조치에 그칠 뿐 판매자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까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반복적으로 판매글을 올리거나 업자로 의심되는 판매자에 대해서는 고발조치 등을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