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0일 밤 11시쯤 인천광역시에 위치한 한 골프장. 인적이 끊겨 고요했다. 칠흑처럼 어두운 필드 위로 트럭이 들어와 헤드라이트를 비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첨벙’ 소리가 나며 적막이 깨졌다. 소리의 진원지는 골프장의 워터 해저드(water hazard·물 웅덩이)였다.

"여기, 이쪽으로 비추라니까!"

트럭에서 내린 남성 두 명이 소곤댔다. 한 남성은 깜깜한 물웅덩이에 손전등을 비췄고, 잠수복을 입은 또 다른 남성이 물웅덩이로 뛰어들었다. 이 남성은 한참을 잠수했다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두어시간 뒤, 이들은 골프공이 잔뜩 담긴 포대 대여섯자루를 트럭에 싣고 골프장을 빠져나갔다.

일러스트=정다운

경기·인천 일대 골프장에서 워터해저드에 빠진 ‘로스트볼(분실구)’을 훔친 ‘골프공 절도단'이 검거됐다. 6일 인천서부경찰서는 지난 4월부터 경기 인천 일대 골프장을 돌아다니며 로스트볼을 훔친 혐의(특수절도)로 A(59)씨와 B(41)씨를 지난달 27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로스트볼은 골프 코스장에 있는 워터 해저드에 빠진 공을 의미한다. 골프장들은 로스트볼을 수거해 중고로 판매한다. 흠집이 있지만 연습용이나 초보자용으로 널리 쓰인다고 한다.

‘골프공 절도단'의 구성원들은 작년 초 워터 해저드에 빠진 공을 건져내는 일용직 잡부로 서로를 처음 만났다. 취미로 스킨스쿠버를 배워 잠수 자격증이 있던 A씨가 잠수해서 공을 건져내면, B씨는 조명을 비추는 등 보조 업무를 맡았다. 2인 1조로 하루종일 공을 건져내다보니 공 건지기에는 도가 텄다.

하지만 둘이서 아무리 많은 공을 건져도 돌아오는 일급은 똑같았다. 불만이 쌓여가던 어느날 이들은 ‘발상의 전환'을 했다. "쌔빠지게 공을 건져내고 매일 똑같은 일당을 받느니, 건져낸 공을 직접 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로스트볼이 한 포대에 15만원이 넘게 팔린다는데, 하루에 수십포대를 건져내고도 푼돈만 버는 게 억울했다. 두 명이 함께 인적이 드문 밤을 틈타 아무도 모르게 공을 건져내기만 하면 걸릴 일이 없을 것이란 자신이 들었다.

계산이 여기까지 섰으니, 남은 것은 실행 뿐이었다. 당장 용역업체를 관두고 범행 장소를 물색했다. 평상시 작업을 했던 경기·인천 외곽지역의 대형 골프장 세 곳을 점찍었다. 드나들던 곳이라 지리도 잘 알았고, 규모가 커 밤 10시만 되도 인적이 없는 곳이다. 경비도 없었다.

심야의 워터 해저드는 이들에게 그야말로 노다지였다. 이들은 두 세시간 동안 작업해 로스트볼 5포대(4000개)를 수거했다. 로스트볼을 사겠다는 업자를 찾는 것은 수거에 비하면 일도 아니었다. 연습용으로 저렴한 공을 찾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다. 간혹가다 고급 골프공을 발견하면 잘 닦아서 따로 팔아 넘기기도 했다.

로스트볼을 훔치려 잠수복을 입고 워터해저드에 잠수한 A씨를 위해 B씨가 손전등을 비춰주고 있는 모습이 골프장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A씨 등은 로스트볼 1포대에 적게는 14만원에서 많게는 18만원에 팔아치웠다. 두 달 동안 이렇게 벌어들인 돈은 1000만원이 넘었다. 잠수장비를 빌리는 데 드는 돈을 제외하더라도 ‘작업’ 한 번에 한 사람당 수십만원이 남았다.

하지만 이들의 수상한 작업은 이내 꼬리가 잡혔다. 피해를 입은 한 골프장이 심야에 골프장을 드나드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자료 등을 근거로 탐문수사에 나섰고, A씨 소유의 트럭이 골프장에 몰래 드나든 것을 확인했다. 잠수장비까지 빌려서 공을 건져낸 ‘골프공 절도단'의 존재도 이내 발각됐다.

경찰은 지난 26일 B씨를 김포의 자택에서 검거했다. B씨의 체포 소식에 A씨도 이날 자진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이들의 ‘재고상품’인 골프공 13포대 분량을 B씨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있는 트럭에서 압수했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골프공을 건져낸 것이 절도인줄은 알았지만, 고생 대비 일급이 너무 적어서 직접 건져내 팔았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이 범행을 순순히 인정했고, 전과가 없어서 불구속 입건한 상태"라면서 "이들의 여죄를 추가로 조사하는 한편, 매입 업자들이 (로스트볼을) 장물인지 알고도 사들였는지도 수사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