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부 등본 확인했지?' 부동산 거래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매매 거래가 시작되면 공인 중개사도 맨 먼저 내놓는 게 등기부 등본이다. '표제부, 갑구, 을구'를 통해 소유권과 저당권 등을 확인하는 게 거래의 기본이라는 얘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이상이 없다면 거래의 반은 끝난 것이다.

그러나 등기부 등본 속 이름과 실제 부동산 소유주가 다르다면 어쩌나. 등기부 속 소유주가 가짜라면.

안병현

음식점을 하는 이모씨는 2016년 6월 송모씨에게 경기도 남양주의 한 아파트를 구입했다. 정상적 거래였다. 아파트 등기부를 떼봤더니 송씨가 올라 있었다. 남들 하는 것처럼 공인중개사를 두고 서류도 빠짐없이 작성했다.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반년여 지난 이듬해 1월 이씨에게 소장 하나가 날아왔다. 송씨 남편의 조카인 오모씨가 그 아파트는 본래 자기가 상속받아야 할 아파트였는데 송씨가 가로채 거래한 것이니 아파트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이씨로선 날벼락이었다. 사연을 알아보니 송씨가 내연남과 짜고 니코틴 원액을 주입해 남편을 살해한 것이 밝혀졌다. 송씨는 남편이 죽은 뒤 아파트를 상속받아 등기했고 한 달도 안 돼 이씨에게 판 것이다. 살인 혐의가 밝혀진 송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상속자인 오씨가 이씨에게 아파트를 돌려달라며 소를 제기한 것이다.

부동산은 문제없이 정상 거래됐지만 주인은 두 사람이 생긴 상황. 두 사람 모두 억울하고 황당하기는 마찬가지. 집주인은 누구일까.

우리 민법에는 등기부의 공신력을 명시적으로 인정한다는 조항이 없다. 법원은 판례를 통해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법적 효력이 없다는 얘기다. 진정한 소유자가 나타나면 등기부는 언제든 말소될 수 있다.

이씨는 억울하겠지만 우리 법 체계는 실소유주, 진정한 소유주를 인정하고 있다. 고의로 피상속인을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하는 경우 상속 결격 사유가 된다. 본래 이 집 상속자, 즉 실소유주는 오씨인 셈. 오씨와 이씨 간 소송에서 법원은 오씨 손을 들어줬다.

이씨가 구제받을 방법은 없을까. 민사상으로 송씨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는 있다. 그러나 송씨는 무기징역형을 받은 상태. 당시의 송씨와 같이 상대가 자금력이 없는 경우라면 사실상 손해를 보전받기 어렵다. 공인중개사에게 주의 의무가 있다지만 공인 중개사도 범죄 행위 등을 알기 어려운 만큼 책임을 묻기 어렵다. 전문가들도 쉽사리 해법을 내놓지 못한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부동산 권리에 하자가 발생할 때 손해를 보전하는 권원(權原) 보험 등을 생각할 수 있지만 보험 범위 등이 제한적이어서 활용도가 크지 않다"고 했다.

입법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달 대법원이 부동산 실명제를 무색하게 하는 판결을 내놓은 것도 이와 닿아 있는 문제다. 대법원은 타인 이름을 빌려 부동산 등기를 했다고 하더라도 소유권은 실제 소유자인 원소유자에게 있다고 판결했다.

원고 A씨 남편은 1998년 농지를 취득했다가 농지법 위반 문제가 생기자 B씨 남편에게 소유권 이전 등기를 했다. A씨 남편이 사망하자 상속인인 아내 A씨가 해당 농지를 돌려달라고 했지만, B씨 측은 거부했다. 이 소송에서 1심과 2심 그리고 대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산권 보호 등을 염두에 두고 차명 부동산을 실소유주에게 귀속시키는 것은 이해가 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부동산 실명법이 시행되었는데도 명의 신탁자의 반환 청구 권리 행사를 받아들이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소수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부동산 명의 신탁은 애초에 판례에 따라 유효성이 인정되기 시작한 것으로,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부끄러운 법적 유산"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명의 신탁을 행정적 과징금과 형사적 제재로 규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차명 소유주가 원소유주 몰래 부동산을 매각한 뒤 재산을 탕진하면 원소유주는 부동산을 믿고 산 이씨 등 엉뚱한 사람에게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국회 등이 나서 보완책을 고민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