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명초 화재 현장 CCTV 단독 입수
소방당국 "필로티 구조·가연성 소재 때문에 급속 확산"
"18분 만에 뒤늦게 신고…대형참사 일어날 뻔"
지난달 26일 대형참사로 이어질 뻔했던 서울 은평구 응암동 은명초등학교 화재는 최초 발화 58초 만에 불이 천장까지 붙으며 순식간에 건물 전체를 집어삼킨 것으로 확인됐다.
3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단독 입수한 은명초 폐쇄회로(CC)TV 영상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오후 3시 41분 40초쯤 은명초 별관 건물 1층 창고 문 틈 사이에서 최초로 빨간 불꽃이 튀었다. 분리수거 쓰레기를 모아 놓는 창고에서 불이 시작된 것이다. 별관 건물은 벽 없이 기둥으로 건물을 떠받치는 필로티 구조였다.
오후 3시 42분 38초. 불꽃이 CCTV 화면에 처음으로 잡힌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창고 벽이 무너지고 불똥이 튀며 천장이 주저앉았다. 불과 10초 뒤, 불길은 가연성 소재로 마감된 필로티 천장과 벽을 타고 순식간에 위층으로 번졌고, 시커먼 연기를 내뿜었다. 천장의 불똥이 일부 차량에 떨어지면서 주차된 차량 19대가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이후 불길이 건물 외벽으로 옮겨 붙으면서 약 2분 40초 만에 건물 전체로 확산했다. 결국 은명초 별관은 불이 난 지 3분 만에 전소(全燒)했다.
당시 학교 옆 놀이터에 있던 이지수(12·가명)양은 "학교 주차장 쪽에서 ‘펑’ 소리가 들리고 1분도 안 돼서 불길이 갑작스럽게 커졌다"며 "운동장으로 뛰어가는 사이 이미 건물 전체에 불이 붙어 있었다"고 했다.
CCTV 화면엔 화재 발생 직후 멀리서 불이 난 걸 발견한 한 목격자가 황급히 창고 쪽으로 갔다가 소화기를 가지러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화재신고가 119에 접수된 것은 최초 목격자가 학교 근처를 지나가던 행인이었다. 교육청 관계자는 "목격자와 선생님 등이 불을 보고 놀라 스스로 진화하려다가 신고가 늦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소방대가 금세 와서 다행이었으나 불길이 순식간에 치솟아 대피가 단 몇 분이라도 늦었다면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할 뻔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소방당국은 불길이 단시간에 확산한 이유로 ‘필로티 구조와 가연성 소재’를 꼽았다. 은명초 별관 1층이 필로티 구조다. 따라서 필로티가 화재 시 사방에서 공기가 유입돼 불을 더 키우는 연통 역할을 했다는 것이 소방당국의 설명이다.
또 필로티 천장에 쓰인 열가소성 플라스틱 마감재와 단열재로 쓰인 스티로폼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실제 동영상을 보면 천장에서 불이 붙은 뒤 불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화재가 빠르게 확산됐다. 외벽을 구성하는 드라이비트와 벽돌, 알루미늄 복합패널엔 단열재로 모두 스티로폼이 쓰여 순식간에 타버렸다.
소방 관계자는 "필로티 구조가 아니었다면 그나마 위로 올라가는 불길을 잡는 데 시간을 벌 수 있었을 텐데 필로티 천장까지 모두 가연성 소재에 스티로폼으로 단열을 하고 있어 불이 빨리 번졌고, 유독가스도 나왔다"며 "또 학교 외벽에 사용된 대부분의 소재도 가연성이라 불이 그렇게 빨리 옮겨 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과 소방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전기안전공사 등은 지난달 27일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합동 감식을 벌였다. 조사 결과, 감식단은 담배꽁초 등에 의한 실화(失火)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화재가 발생한 창고에서는 담배꽁초 여러 개가 발견됐다고 한다. 감식단은 당초 조사했던 전기적 요인은 화재 원인이 아니라고 봤다. 주차장에 선풍기와 환풍기 등이 있었지만, 콘센트에 연결이 되지 않아 전류가 흐르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CCTV 영상에서 창고 근처를 드나든 목격자와 행인 등을 대상으로 참고인 조사를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