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새벽 4시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40여명이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에 있는 10m 높이 구조물에 올라가 고공 농성에 돌입했다. 하루 수만 대의 차량이 오가는 톨게이트 전면에 '해고는 살인이다. 이강래(한국도로공사 사장)가 살인자다. 문재인도 공범이다'라고 붉은 글씨로 쓴 플래카드도 내걸었다.
오후가 되자 고공 농성장에서 100여m 떨어진 한국도로공사 서울영업소 앞에서도 연좌 농성이 시작됐다. 요금수납원 700여명이 '투쟁·단결'이라고 쓴 빨간 머리띠를 맨 채 돗자리를 깔고 앉아 구호를 외쳤다. 불법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김명환 민노총 위원장도 참석했다. 톨게이트 구조물 위에서 시위한 노조원들은 이날 밤을 새워 농성을 벌였다. 이날 시위가 벌어진 건 전국 톨게이트에서 근무 중인 수납원 6500명 중 1470명이 1일 부로 일자리를 잃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도로공사는 공공 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 비정규직 수납원들을 자(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고 작년 9월 제안했다. 전체 수납원 6500명 중 5030명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1470명은 회사의 제안을 끝까지 거부했다.
이들은 현재 외주 업체 소속이다. "도로공사 자회사가 아니라 본사 정규직으로 고용해달라"고 요구해왔다. 결국 30일로 계약이 끝나 1일부터 일자리를 잃게 됐다. 이들은 "사실상 해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도로공사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기간제 근로자 750여명을 채용했다"며 "근무 순서를 조정하면 요금 수납 업무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직접 고용해라" 끝까지 요구한 1470명
도로공사는 작년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도로공사 비정규직에는 안전순찰원 896명과 요금수납원 6500명 등이 있다. 도로공사는 이 중 안전순찰원은 공사 정규직으로, 요금수납원은 '한국도로공사서비스 주식회사'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그곳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국민의 생명이나 안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는 직접 고용을 원칙으로 하되 직종별로 정규직 전환 방식을 달리할 수 있다'는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른 조치다.
그러면서 평균 2800만원인 요금수납원 연봉을 3700만원으로 30% 정도 올리고, 정년도 60세에서 61세로 연장해주겠다는 '당근'을 제시했다.
전체 수납원 78%(5030명)가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끝까지 거부한 1470명은 주로 민주노총(400여명)과 한국노총(1000여명) 소속이다.
◇도로공사 "사라질 업무까지 정규직 해줄 순 없어"
도로공사는 기술 발전에 따라 요금 수납 업무는 없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수납원들을 직접 고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실제 도로공사는 지난 정부 때 '스마트톨링'이라는 요금 자동 수납 시스템을 2020년부터 도입하기로 했다. 고속도로에서 통행권을 뽑을 필요 없이 톨링 존만 지나가면 카메라가 번호판을 인식해 자동으로 통행료를 결제하는 체계다. 문재인 정부 들어 도입이 연기됐지만, 해외 사례를 봐도 스마트톨링 도입은 시간문제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전에도 요금수납원들은 자신들이 외주 업체 소속이긴 하지만 사실상 도로공사 직원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외주 업체 소속 수납원 750여명이 지난 2013년 도로공사를 상대로 "우리가 사실상 도로공사 소속 근로자라고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내 1심(2015년)과 2심(2017년)에서 승소했다. 이들이 대법원에서도 승소하면 도로공사는 소송을 낸 750여명을 정규직으로 직접 채용해야 한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그런 상황이 온다 해도 도로 정비 등 다른 보직으로 채용하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수납원 보직으로 채용하지는 않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