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어느새 입산 21년 차를 맞았느니 '나 여기 잘 살아있다'고 부표(浮標) 하나 띄우고 싶었다."

이원규(57) 시인이 시집 '달빛을 깨물다'(천년의시작)와 사진을 곁들인 시집 '그대 불면의 눈꺼풀이여'(역락)를 한꺼번에 내놓았다. 서울 인사동 마루 갤러리에서 2일까지 사진전 '별나무'도 연다.

이원규는 1998년 서울에서 다니던 잡지사 기자를 그만두고 지리산에 눌러앉았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섬진강 곳곳을 돌아다녔다. '지리산 시인'으로 이름을 높이더니 느닷없이 투병 생활을 거치면서 지리산 풍경을 담는 사진작가로 거듭났다. 시인은 "잠시 몸이 무너지고 일단 초심의 자세를 바로잡았다"며 "구름과 안개 속에 얼굴 가린 야생화를 만나고 우리 토종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별들을 보았고, 낡은 카메라로 시(詩)의 민얼굴을 찍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야생화와 별들이 나를 살렸다"고 한 그는 "겨울 산정에 올라 별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지리산 시인’ 이원규는 요즘 야생화, 별 등 지리산 풍경을 담은 사진을 찍고 있다.

밀렵꾼에게 총을 맞아 다친 말똥가리 두 마리를 치료하고 키운 적도 있다. 그중 한 마리는 죽고, 남은 한 마리는 시인의 집에서 1년 며칠을 지내다가 야생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시인은 집 나간 말똥가리를 '천'이라고 부르며 '남몰래 날개 뼈 근육을 되살린/ 애인보다 크고 아내보다 작은 말똥가리 천'이라고 그리워했다.

시인은 "시는 손이나 머리가 아니라 발로 쓰는 것"이라며 '족필(足筆)의 시학'을 제창했다. 모터사이클을 애마(愛馬)라 불렀다. '산복사꽃 피는 피아골 열두 굽이길/ 나의 흑마 모터사이클 타고 룰루랄라 달리는데/ 입속으로 토종벌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중략)/ 나의 고백 나의 노래 이랬을까/ 도대체 말을 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지리산의 사람과 자연이 날마다 시가 됐다. '전라도 구례 땅에는 비나 눈이 와도/ 겁나게와 잉 사이로 내린다/ 가령 섬진강변 마고실의 뒷집 할머니는/ 날씨가 쫌만 추워도, 겁나게 추와불고마잉!/ 리어카 살짝 밀어줘도, 겁나게 욕봤소잉!/ 강아지 짖어도, 고놈의 새끼 겁나게 싸납소잉!' '백운산 아래 빈집 아궁이/ 캄캄한 자궁에 군불을 지핀다/ 젖은 매화나무가 슬슬 콧김을 내뿜으면/ 구들장 밑의 고래 한 마리/ 불고래 방고래 삼년 만에 불춤을 춘다' 같은 시구는 지리산 시인만이 쓸 수 있는 절창이다.

시인은 시를 통해 '지리산에 살다 보면 서울 사람들이 존경스럽다'며 '견디는 일 그 자체는 실로 경이로운 일'이라고 조롱했다. 그는 '지리산에 살다 잠깐 서울에 가면, 이명인지 헛것인지 지진 나고 화산 폭발하는 듯하다/ 오직 멀미의 힘으로 지구는 돌며 전속력으로 나아간다'고 풍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