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다 못해 오싹하다. 바깥의 무더위를 까맣게 잊는다. 피서(避暑)라는 말마따나 더위를 피해 피서지를 찾은 셈이다.
이 완벽한 피서지는 바로 '동굴'이다. 동굴 안은 한여름에도 바깥보다 10~20도 이상 온도가 낮다. 천연 에어컨, 천연 냉장고나 다름없다. 서늘함에 때론 소름이 돋을 정도다. 낯설지만 신비로운 풍경, 다양한 즐길 거리까지 있다. 시원한 동굴에서 먹고 보고 누린다. 올여름 완벽한 피서를 찾아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동굴 속 스테이크와 오미자 와인
좁고 가파른 산길을 한참 달리자 동굴 입구가 나타났다. 경북 문경에서도 외진 동로면의 황장산 자락. 동굴 카페 까브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여름이면 이 깊은 산골까지 '동굴 찾는 사람들(동찾사)'이 줄을 잇는다.
동굴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수고를 자처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천연 에어컨이 뿜어내는 서늘한 기운 때문이다. 동굴 안은 한여름에도 17도를 유지한다. 습기나 물기도 없어 쾌적한 피서가 가능하다. 대전에서 온 주부 한영옥(52)씨는 "여름에도 '춥다'는 말이 나올 만큼 시원하다 못해 등골이 오싹하다"며 "먼 길 찾아온 보람을 제대로 느꼈다"고 했다.
동굴 자체도 색다른 볼거리다. 까브는 원래 수정을 채취하던 광산이었다. 길이 150m, 폭 6.5m, 높이 6.5m의 동굴 내부엔 채굴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원래 형태를 그대로 두고 만든 계단식 바닥 가운데는 투명 유리다. 그 위에 올라서면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달라지는 동굴 풍경도 색다르다. 희고 반짝이는 수정 동굴 벽면은 조명을 받아 웅장하면서도 신비로운 자태를 뿜어낸다.
시원하고 분위기 좋은 동굴에서 커피나 와인, 식사를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문경의 특산품인 오미자, 사과로 만든 와인과 오미자 와인 소스를 곁들인 '오미자 등심스테이크'가 인기 메뉴. 스테이크, 오미자 와인과 함께하는 '동굴 속 식사'는 별미이자 색다른 추억이다. 평일 오전 10시 30분에서 오후 5시, 주말 오전 10시 30분에서 오후 7시까지.
충북 충주 목벌동엔 100년 세월이 멈춘 곳이 있다. 1929년부터 활석과 활옥, 백운석 등을 생산하던 활옥 동굴이다. 갱도 길이가 57㎞로 많을 땐 광부 8000명이 일한 광산이다. 화려한 시절을 뒤로하고 동굴은 지난해부터 휴식과 체험공간으로 변신 중이다. 활옥동굴카페도 문을 열면서 '동찾사'에게 특별한 피서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활옥동굴카페는 활옥 동굴 옆 활석과 활옥을 분쇄하던 공장에 들어섰다. 분쇄기나 오래된 시설 일부를 그대로 남겨둬 '새롭지만 오래된' 느낌을 받는다. 이곳에는 에어컨 등 냉방시설이 따로 없다. 그럼에도 시원한 바람이 끊이질 않는다. 천연 에어컨 덕분이다. 활옥 동굴 속 온도는 한여름에도 12~15도 사이. 동굴 속 바람을 끌어들여 카페 냉방을 한다. 동굴에 들어가지 않아도 카페에서 그 냉기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바깥과 20도 가까이 온도 차가 나는 실제 동굴 내부는 '시원하다'는 동사보다는 '춥다'에 더 가까울 것 같다. 6월 말부터 직접 활옥 동굴을 둘러볼 수 있는 투어가 시작된다. 쉽게 접할 수 없는 광산시설과 흔적들을 만나며 더위를 피할 수 있다. 월요일 휴무. 평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 주말 오전 10시 30분에서 오후 8시 30분까지.
자연이 빚은 바다 동굴 속으로
어둠이 내려앉으면 향연이 시작된다. 라이트아트페스타(이하 라프)는 세계적 조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빛의 축제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녹차 밭 일대를 무대로 매일 밤 불을 켠다. '빛의 풍경화가'로 불리는 브루스 먼로가 제주 풍경에 영감을 받아 만든 '오름'을 비롯해 빛과 색, 음향이 어우러진 작품을 보고 느낄 수 있다.
라프를 찾게 된다면 동굴 카페에 꼭 들러야 한다. 용암 동굴과 분화구를 활용해 만든 동굴 카페는 관람객의 쉼터이자 전시 공간이다. 제주 특유의 신비로운 용암 동굴 속에서 제주의 산호와 성게를 모티브로 한 작가 제이슨 크루그먼과 검은 비닐과 광섬유로 과잉 소비 생태계를 표현한 이병찬, 제주에 불시착한 '리모'라는 캐릭터를 표현한 장 피고치의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동굴 카페는 한여름에도 24~25도로 시원하다. 동굴카페 말고도 족욕이나 짚라인 체험도 즐겨볼 것. 오전 9시에서 자정까지.
선인장 군락지로 이름난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 월령 포구 앞엔 바다 동굴이 보인다는 카페월령이 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건물 한복판에 자리 잡은 동굴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다 동굴은 2002년 이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높이 10m, 폭 10m의 용암 동굴이다. 건물은 이 동굴을 에워싸듯 세워졌다. 덕분에 2층에서 지하 1층을 오가며 바다 동굴을 볼 수 있다.
카페월령은 지난해 7월 새롭게 문을 열었다. 월령리의 '월(月)'이 달을 뜻해 달 모양의 조명을 새로 달았는데 그 덕에 동굴에 신비감이 더해졌다. 동굴은 물때마다 바닷물이 차올랐다 빠져나간다. 이때 바닷물을 따라 물고기들도 동굴 속으로 들어온다. 벵에돔, 줄돔, 참돔, 농어 등 쉽게 볼 수 없는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대학생 최한성(23)씨는 "동굴이 바로 옆에 있어서 시원하기도 하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구경거리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 동굴이 있는 카페 내부 온도는 한여름에도 25도 안팎이다. 카페에서 바라보는 일몰도 놓치면 후회할 만큼 아름답다. 시원한 커피나 딱새우 요리를 맛보며 해가 저물기를 기다려보는 것은 어떨까. 매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10시까지.
동굴 속 신개념 놀이터
아이들을 위해 놀이터로 변신한 동굴도 있다. 지난달 문을 연 전남 광양의 광양에코파크다. 옛 경전선 폐터널인 석정 2터널을 활용해 어린이를 위한 동굴체험학습장을 만들었다. 2017년 광양 와인동굴로 변신한 석정 1터널과 함께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동굴 여행지로 각광받는다. 화석 탐사, 암벽 등반, 모래 쌓기, 액션 슬라이드 등 미디어를 이용한 다양한 체험과 놀이를 즐길 수 있다. 마음껏 뛰고 놀다 보면 17~18도로 서늘한 동굴 안에서도 땀이 맺힌다. 오전 9시 30분에서 오후 6시까지.
다양한 체험으로 속을 채운 광양 와인동굴도 함께 들러볼 만하다. 와인동굴 내부는 언제나 17도다. 와인을 숙성하기에 알맞은 온도이기 때문이다. 잘 익은 세계의 와인들을 직접 맛보고 사 갈 수도 있다. 사람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미디어 인터랙티브존과 미디어 파사드, 빛터널, 트릭 아트 등 보고 즐길 거리가 많다. 광양 지역 특산품인 매실로 '나만의 매실 와인 만들기' 체험도 해볼 수 있다. 오전 9시 30분에서 오후 7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