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시모집에서 학생부종합전형에 지원할 계획인 김진성(가명·18)군은 대학별로 모집요강을 살펴보던 중 궁금증이 생겼다. 평가요소인 ‘전공적합성’의 세부 평가항목에 ‘계열’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김군은 “몇몇 대학에선 계열적합성을 중심으로 평가한다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오는 9월 2020학년도 수시모집 원서접수를 앞두고 대학입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수시모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의 핵심 평가요소로 '계열적합성'이 주목받고 있다. 미래 사회에 계열을 아우르는 역량을 갖춘 융합 인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서울 주요 15개 대학의 2020학년도 수시 모집요강과 대입정보포털 '어디가' 등을 살펴본 결과, 11개 대학이 학종 세부 평가항목 등에서 '계열'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지난 2016년부터 학종의 서류평가 요소로 계열적합성이 언급되기 시작했지만, 대학별 모집요강 등에 등장한 건 2018학년도 대입부터다. 올해는 이 대학들 중 입시자료에 '계열'을 명시한 대학이 지난해보다 3곳 늘었다.

전공적합성은 지난 2007년 학종의 전신인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면서 대입 평가 요소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학생의 잠재력을 정성평가하는 전형의 특성을 반영하는 취지에서다. 그동안 학과 단위로 학생을 뽑은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학종 평가요소에 이를 그대로 반영해왔다. 하지만 최근 교육환경과 입학전형 등이 변화하면서 전공적합성을 '계열'로 확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러스트= 나소연

◇전공에서 계열로 확장…'활동 다양성' '선발단위 확대' 때문

건국대, 경희대, 서울여대, 연세대, 중앙대, 한국외대 등 6개 대학이 지난해 초 발표한 '대입전형 표준화방안 연구'에 따르면, 전공적합성은 지원 전공(계열) 관련 분야에 대한 관심과 이해, 노력 등을 의미한다. 계열적합성은 인문·사회·자연·의학 등 지원 전공이 속한 계열에 대한 준비 정도를 말한다.

앞서 전공적합성은 학생들의 적극적인 활동 참여를 유도하는 순기능이 있지만, 전공과 관련된 보여주기식 활동을 부추기는 역기능이 있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이에 6개 대학은 '학종 공통 평가요소 및 평가항목' 연구자료에서 "전공적합성은 전공에 적합한 활동이 있으며 대학 과정의 전문성과 지식을 쌓거나 진로가 일관돼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며 "4차 산업혁명에 맞게 대학 전공이 광역 단위로 통합되는 추세를 반영해 전공의 개념을 계열로 넓히자는 주장도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대입 모집단위는 학부나 계열로 조정되고 있다. 성균관대는 학종(계열모집)에서 인문과학·사회과학·자연과학·공학 등 계열별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으며, 고려대는 내년도 학종에서 계열에 적합한 인재를 뽑는 전형을 따로 운영할 계획이다.

◇"계열적합성, 관심 교과목에서 출발해 다른 분야로 확장해야"

이러한 변화는 현재 고교 1, 2학년에 적용되는 2015 개정교육과정 도입과도 맞물려 있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문·이과 통합시대에 발맞춰 전 계열을 고르게 공부하되 자신이 희망하는 계열과 관련된 교과목에 방점을 찍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예를 들어, 상경계열 지망생이라면 다른 인문계열 학생들보다 수학 교과에 대한 관심과 성취가 어느 정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자신이 관심 있는 교과목에서 무엇을 확장해 탐구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면 좋다. 이재하 前 전국진학지도협의회 수석대표(대전 중일고 교무운영부장)는 "가령, 수학 교과 중 확률과 통계로 상경계열에 필요한 통계의 기초를 다지거나 영어 교과에 자신의 관심사와 관련된 지문이 나오면 원문을 찾아 읽고 발표하는 등 자신이 필요한 교과를 토대로 계열적합성을 드러낼 수 있다"며 "계열적합성은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확대한 2015 개정교육과정과 선순환 구조를 이룰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다양한 과목 선택권을 강화하기엔 아직 현실적인 벽이 높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지난해 말 명지대 등 4개 대학이 고교 교사 42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5 개정교육과정에 대한 고교의 준비현황' 조사에 따르면 소속 고교의 학생의 과목 선택권 보장을 위한 준비 정도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지역 고교의 한 진로진학상담부장은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기엔 교사 수급이나 유휴교실 부족 문제 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고교 교육현장에선 대학이 학종에서 지원 전공(계열)에 필요한 과목을 이수했는지 따지는 만큼 모집단위별 선수 이수 과목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학생들의 교과목 선택에 대한 부담을 덜어줘야 한단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해 경희대 입학연구센터는 지난해 발간한 '고등학생 교과별 선택과목의 대입전형 활용에 대한 인식 연구'를 통해 "고교 교사들은 대학의 모집단위별 선수 이수 교과목이 제시될 때 전공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를 자극할 수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대학가에서 이러한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지난 3월 명지대 등 4개 대학은 공동연구를 통해 ‘2015 개정교육과정 시행에 따른 학종 준비를 위한 선택교과목 가이드북’을 펴냈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공학계열 건설 전공에 지원하려는 학생은 일반선택과목에서 물리학·지구과학Ⅰ, 미술, 심리학, 철학 등을 듣고, 진로선택과목에서 공학 일반, 수학과제 탐구, 미술창작 등을 수강하는 식이다. 단, 해당 가이드라인은 이들 대학에만 한정해 적용되며 평가에서는 이수 교과목을 비롯해 성취 수준, 교과 이외의 교내 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이석록 한국외대 입학사정관실장은 “앞으로는 학생들이 전공과 관련된 선택과목을 어떻게 설계하는지가 계열적합성 평가에서 중요해질 것”이라면서도 “상위권은 관심사에 따라 선택과목을 도전적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중·하위권 학생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커 학교에서 선택과목을 폭넓게 개설해 학생의 선택권을 최대한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평가 범위 확장될 가능성도

다만, 서울 주요 대학 입학사정관들은 계열적합성으로 용어를 변경하는 것에 대해선 아직 회의적이다. 계열적합성보단 전공적합성이 고교 현장에서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임진택 경희대 책임입학사정관은 "그럼에도 대학은 지원자들의 활동과 경험을 전공과 관련한 좁은 의미가 아닌 넓은 관점에서 평가하려는 추세"라며 "이러한 관점에서 계열적합성의 취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공적합성의 평가 범위는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임 사정관은 “앞으로 신입생 선발 단계에서부터 무전공제·무학과제, 자율전공제 등이 더욱 활발하게 도입되면 지원 학과나 계열과 관계없이 학생의 관심 분야와 관련된 활동이나 경험을 평가하는 ‘관심분야 열정·몰입도’나 ‘탐구활동력’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자료= 각 대학 수시 모집요강과 대입정보포털 ‘어디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