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찾은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남구로역의 한 인력사무소. 상가 3층에 자리 잡고 있던 이곳은 내부 철거 작업이 한창이었다. 문을 연 지 3년 만에 영업을 중단했다고 한다. 철거 현장을 지켜보던 근처 인력사무소 대표는 "우리 인력사무소도 작년과 비교하면 매출이 40% 줄었다"며 "경기 불황에 거대 노조의 횡포까지 더해져 영세 인력사무소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고 했다.

남구로역 일대는 서울 최대 건설 인력 시장이다. 인력사무소 30여 곳이 모여 있어 매일 새벽 일용직 일자리를 구하려는 구직자 수백 명으로 붐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만 5곳 이상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지난달 22일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남구로역 인근의 인력사무소가 세입자를 찾지 못해 비어 있다.

인력사무소들이 줄지어 간판을 내리는 가장 큰 이유는 건설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의 '건축 허가 및 착공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전국에서 착공된 건축물 수는 1만7351동(棟)으로, 최근 5년 사이 가장 적었다. 가장 많았던 2016년 3월(2만2375동)보다 5000여 동 줄었다. 가리봉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2년 전만 해도 인력사무소 입주 경쟁이 있어 매물이 나오면 바로 나가던 곳인데 올해는 권리금도 없는데 수개월째 공실(空室)인 곳이 많다"며 "일대 상권까지 찬바람이 불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남구로역 일대 인력사무소 사장들은 "지난해부터 심해진 민노총과 한노총 같은 거대 노조의 건설 현장 점거 행태도 영업난의 주요한 이유"라고 입을 모았다. 인력사무소는 건설 회사에 근로자를 보내주고, 이 근로자 하루 일당의 10% 정도를 수수료로 받는다. 이런 영업 방식에 빨간불이 켜진 건 노조가 건설 회사에 자기 노조원을 고용하라고 시위하고,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공사 현장을 점거한 채 비(非)노조원 출입을 막으면서부터다. 경기도 평택의 한 공사 현장 소장 김모(61)씨는 "노조가 훼방을 놓으면 정해진 공기(工期)를 지킬 수 없고 비용도 늘어난다. 울며 겨자 먹기로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조원을 쓰면 인력사무소에서 인력을 구할 때보다 일당을 1만~2만원 더 줘야 한다. 김씨는 "노조가 근로자와 인력사무소, 건설 회사까지 모두를 죽이고 있다"고 했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도 "사실상 노조가 인력사무소 역할을 대체하면서 영세 업장들이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노조의 행태를 견디지 못한 인력사무소들이 자신들에게 일감을 구해다 줄 노조를 찾아 후원하는 경우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영업 적자를 호소하던 인력사무소 7~8곳이 2000만원씩 모아 업장을 확보해 줄 수 있는 한노총 산하 노조를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원 채용이 보장된 건설 현장을 확보하면 인력사무소에서 독·과점적으로 근로자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으로 노조 활동가를 섭외해 노조의 행패에 올라타는 셈이다.

일부 인력사무소는 '우리가 보내는 인부가 노조원으로 가입하도록 주선할 테니 일감을 보장해달라'는 식으로 특정 노조와 거래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조에 가입한 인부들이 노조 활동을 하며 고용이 보장되면 이후에 인력사무소와 거래를 끊기 때문에 이 같은 방식의 공생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조들이 노동권을 주장하면서 비노조원의 노동권은 차별하는 이기적인 행태를 보여 수요와 공급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며 "노조 스스로 자신들의 활동에 차별적인 요소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