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취업 준비생에게 ‘희망 고문’을 멈춰 달라며 “’피뽑탈’이 없어져야 한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이번에도 내 신선한 피만 자랑하고 왔네.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취업 준비 3년 차인 장모(28)씨가 지난달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하소연했다. 2년 만에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는 "나도 뽑힌 피만 3L는 된다. '피뽑탈'은 다음이 마지막일 것"이라며 장씨를 위로했다.

최근 취준생들 사이 '피만 뽑히고 탈락했다'는 뜻의 '피뽑탈'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대부분 기업은 신입 사원 채용 과정에서 최종 면접을 하기 전 신체검사를 진행한다. 지원자가 업무에 지장이 있을 만한 신체적 결함이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이 과정은 혈액 검사도 포함한다. 기업의 최종 면접까지 도달하는 횟수가 많은 취준생들은 그만큼 혈액 검사도 자주 한다는 의미다.

'피뽑탈' 횟수는 취준생들 사이에서 훈장과도 같다. 최종 면접까지 올라갈 만큼의 실력과 다양한 채용 과정을 겪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취준생 황모(30)씨는 올해 초 '피뽑탈'을 한 번 이상 경험한 사람들을 모은 취업 스터디를 결성했다. 황씨는 "일반 스터디에 들어가면 새로 시작하는 지원자를 오히려 가르쳐야 했는데, 지금 스터디는 그렇지 않아 오롯이 취업 준비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신조어 '피뽑탈'의 등장 시기는 블라인드 채용이 증가한 지난해와 맞물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 채용 담당자들은 "블라인드 채용이 늘어나며 이력을 볼 수 없어 면접 대상자를 많이 뽑는 편"이라고 했다. 업무 적합도를 더 면밀히 따지기 위해 필기시험, 실무 면접 등 대상자도 과거보다 증가하는 추세다. 한 대기업 채용 담당자는 "면접 대상자가 5년 전에 비해 2배가량 늘었다"고 했다.

취준생들은 늘어나는 면접 기회가 '희망 고문'이라며 낙담한다. 대학 졸업을 앞둔 김대정(27)씨는 "면접 대상자가 늘어나니 면접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었다"며 "예전에는 면접을 보러 간다고 하면 반은 합격이라는 의미였지만,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기업 채용 담당자들은 "경쟁자가 늘어난 만큼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을 잘 소개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