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삶에서 좋은 것은 이것뿐"이라며 염문을 뿌려 스캔들 여왕에 올랐다. 여성이 성과 연애에 관한 결정권을 쥐는 게 드문 시대에 '팜파탈'로 손가락질당했다. 작가로 유명했지만 피아니스트 쇼팽의 연인으로 더 각인되었다. 조르주 상드(1804~1876)가 세상을 뜨자 빅토르 위고는 "상드는 하나의 사상이다"라고 말했다.
기병대 장교인 아버지와 유랑 극단에서 춤추는 단역 배우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낙마 사고로 비명횡사하자, 어머니는 딸 양육권을 포기하는 대가로 시어머니에게 두둑한 보상금을 챙겨 떠났다. 상드는 할머니 손에서 남 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라틴어, 그리스어, 수학, 역사, 예술 등을 두루 배우며 교양과 기품을 갖추었다.
18세 때 육군 소위와 결혼했다. 남편은 바람을 피우고, 결혼 생활은 끔찍했다. 그 권태에서 도피 방편으로 아리스토텔레스, 파스칼, 단테, 몽테뉴 같은 철학자와 작가의 책에 빠져들었다. 21세 때 유부녀로 26세 변호사와 사랑에 빠졌다. 28세 때 첫 소설을 내며 오로르 뒤드방이란 본명을 버리고 조르주 상드란 필명을 썼다.
34세 때 결핵 환자 쇼팽과 사랑에 빠졌다. 그의 간병비와 세 자식을 위해 돈을 벌었다. 쇼팽이 딸 솔랑주에게 눈독을 들인 걸 알고 절교 편지를 썼다. 헌신과 희생, 그리고 배신으로 얼룩진 상드와 쇼팽의 사랑은 9년 만에 막을 내렸다. 상드에게 '가정부, 몽유병 환자, 뜨내기 배우, 흡혈귀, 정신 나간 아줌마, 소설의 매춘부'라는 거친 비난이 쏟아졌지만 연애에 꿋꿋했다.
상드는 평생 편지를 4만여 통 쓴 걸로 유명하다. 그는 여러 연인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썼다. 상드에게는 마치 편지가 그의 사상이고 존재 증명인 듯했다. 편지 수신인도 톨스토이에서 발자크, 에밀 졸라를 포함해 실로 다양했다. 조르주 상드는 '편지의 신'이라 부를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