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8일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광주광역시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 기념식에 참석해 "아직도 5·18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망언들이 거리낌 없이 큰 목소리로 외쳐지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부끄럽다"며 이같이 말했다. 자유한국당의 '5·18 망언' 등을 겨냥해 문 대통령이 작심 비판을 내놓은 것으로 해석됐다. 여권(與圈)은 이에 발맞춰 한국당의 역사관을 규탄하는 등 대야(對野) 총공세를 펼쳤다.
문 대통령의 5·18 기념식 참석은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에 이어 2년 만이다. 문 대통령은 "40주년인 내년에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올해 꼭 참석하고 싶었다"며 "광주 시민들께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러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미안하고 부끄러운'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지는 않았다. '5·18 망언'과 이에 대한 징계 절차를 완료하지 않은 한국당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이 정치권에서 나왔다.
문 대통령은 "5·18의 역사적 의미와 성격에 대해 이미 20년도 더 전에 국민적 합의를 이뤘고, 법률적인 정리까지 마쳤다"며 "더 이상의 논란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5년 제정된 '5·18특별법'에 따라 군사반란, 내란죄 등으로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재판에서 시민들의 저항을 '헌법 수호 행위'로 규정했다. 5·18은 이후 1997년 법정 기념일로 지정됐고,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도 이뤄졌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추가적인 5·18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아직 규명되지 못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며 "5·18 이전, 유신과 5공 시대에 머무르는 지체된 정치의식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새로운 시대로 갈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아직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출범조차 못 하고 있다"며 "국회와 정치권이 더 큰 책임감을 갖고 노력해 달라"고 했다. 진상조사위는 지난해 9월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한국당이 추천한 조사위원 2명의 자격 요건을 여권이 문제 삼으면서 8개월째 표류 중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여권은 '헬기 사격' '시신 암매장' '계엄군 성폭행' 등 5·18 관련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한국당에선 "5·18 유공자는 괴물 집단" "북한군 개입 폭동" 같은 발언이 나왔고, 이후 관련 논란이 계속됐다. 이날도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광주 시민과 똑같은 심정으로 한국당의 극우화된 역사관에 분노한다"고 했다. 설훈 최고위원은 "독재 정권에 항거한 광주 시민을 '폭도' '괴물 집단'으로 폄훼하는 파렴치한 행위들이 여전히 대한민국 국회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사회 원로와 전문가들은 "5·18을 겪은 지 39년이 됐는데도 극심한 대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강원택 교수는 "정치권이 역사적 상처인 5·18을 정쟁(政爭)의 장으로 활용해 서로 지지층 결집만을 꾀한다면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인하대 홍득표 명예교수는 "내년 40주기 기념식은 광주 영령의 넋을 진심으로 기리는 사회 통합의 장이 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