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은 공개가 원칙이다. 다만 헌법은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질서를 방해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칠 염려가 있는 경우에는 법원의 결정으로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성범죄 등 2차 피해가 우려되는 경우에도 비공개로 재판이 이뤄진다. 다만 사실심(事實審)인 1·2심과 법률심(法律審)인 3심(상고심)은 차이가 있다. 하급심에서 적용된 법률에 문제가 없는 지를 따져보는 상고심은 대부분 공개되지 않는다. 재판 과정이 아닌 결론을 내리기 위한 ‘합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A씨는 2017년 5월 공갈죄로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2심(항소심)과 대법원에서의 상고심을 거쳐 형이 확정됐다. A씨는 2018년 5월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대법원 재판연구관의 심리의견서’, ‘대법관 4명이 재판장에 올린 의견서’ 등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같은해 6월 "재판연구관의 심리의견서 등은 재판연구 또는 조사물로, 종결된 사건일지라도 공개할 경우 다른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법관의 공정한 재판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으므로 비공개 처분한다"고 했다.

이에 A씨는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공공기관 정보 비공개 결정 취소 소송을 냈다. 법원조직법상 대법원장이 한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은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제기해야 한다. A씨 측은 "재판 당사자로서 심리 경과를 파악하고 본인에게 잘못이 있는지 여부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 정보를 열람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재판 정보를 공개해도 다른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법관의 공정한 재판에 지장을 주지도 않는다"면서 "비공개 처분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박형순)는 최근 A씨가 제기한 소송을 기각했다고 13일 밝혔다. 법원조직법 65조가 판단의 근거가 됐다. 이 조항은 ‘심판의 합의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의 합의 경위, 과정, 내용 등과 관련된 정보는 내용을 불문하고 공개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재판연구관들의 심리의견서 등은 재판을 맡은 대법관들의 합의를 위해 담당 재판연구관이 기록을 검토하고 법리를 연구한 자료다. 당사자가 열람·등사할 수 있는 사건 기록이 아닌 대법원 내부 합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다. 이 보고서를 검토한 대법관들이 작성한 의견서도 그 자체로 대법원 재판부에서 합의된 내용이기 때문에 법원조직법 제65조에 따라 공개되지 않는 정보에 해당한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재판 합의와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면 사법권 독립과 법관의 공정한 재판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합의를 둘러싼 내·외부의 공격을 막고 법관의 양심과 증거에 따른 사법권 행사를 보장해 국민과 소수자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또 "합의 과정에서 나오는 모든 의견이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A씨가 비록 재판 당사자로서 밀접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나, A씨게 얻게 될 이익이 사법권 독립으로 확보되는 공익적 가치보다 크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