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산부인과 앞에 중국인 여성 3명이 모였다. 병원 입구에는 중국어로 '가다실 당일 주사 가능·예약 불필요'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가다실은 자궁경부암 백신이다. 한 여성이 휴대폰을 꺼내 한국의 카카오톡 같은 '위챗' 프로그램을 켰다. 간판에 있는 QR코드를 찍으니 중국인 전용 상담 채팅방으로 연결됐다.

한국 산부인과를 찾는 중국 여성들이 늘고 있다. 대부분 자궁경부암 예방 주사를 맞기 위해서라고 한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산부인과 관계자는 "매일 평균 30~40명씩 중국인 고객이 와서 주사를 맞고 있다"고 했다.

자궁경부암은 자궁 입구에 생기는 암이다. 백신을 맞으면 발병 원인으로 꼽히는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감염을 90% 막을 수 있다고 한다. 통상 6개월 이내에 세 차례 주사를 맞는다. 세 번 맞는 데 60만원 가까이 든다. 한국에 자주 와야 하는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산부인과들에 따르면 중국인이 한국 산부인과에 몰린 것은 작년부터다. 지난해 4월 미국 제약 회사인 머크가 중국에 최신 자궁경부암 백신을 팔기 시작하자 중국 일부 도시에서는 초당 2만건이 넘는 접종 예약이 접수됐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백신 가격도 올랐다. 가짜 자궁경부암 백신도 등장했다.

그러자 중국인들은 가까운 한국을 찾아왔다. 산부인과 관계자는 "중국인 고객들과 이야기해 보면 본국(중국)에서 주사를 맞는 걸 무서워하고, 본국 약품도 잘 믿지 않더라"라고 했다.

일부 산부인과는 성형외과와 협업하기도 한다. 성형외과를 찾은 중국인을 상대로 자궁경부암 백신 마케팅을 하고, 산부인과 고객은 다음번에 성형외과 진료 때 할인 혜택을 주는 식이다. 원영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총무이사는 "저출산 때문에 운영난을 겪는 산부인과 병원들이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