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내기 엄마 이세경(가명·38)씨가 생후 넉 달 된 아기를 안고 경기도 성남시 분당차병원에 찾아왔다. 5년간 난임 치료를 도와준 이 병원 김지향(43) 교수를 찾아가 인사하고, 품에 안은 아기에게 "아가야, 널 만들어준 선생님이야"라고 속삭였다. 5년간 드나들며 친구처럼 친해진 이 병원 간호사들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이씨는 아이를 가지려고 결혼 후 한동안 부부끼리 노력하다 3년째 전문가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병원에 왔다. 유산 경험을 떠올리며 '혹시 그래서 아이가 안 생기는 걸까' 마음앓이도 했다. 지난해 임신에 성공한 뒤, 아기가 너무 귀하고 소중해 분만 전까지 매주 병원에 와서 아기 심장 박동 소리를 들었다.
분당차병원 김지향·신지은(40) 교수는 이런 경험들을 잊지 못해 난임센터에 10년 넘게 근무 중이다. 두 사람이 언니·동생처럼 서로 고민을 나눈 지 2009년부터 10년째다. 환자들이 오랫동안 임신이 안 되면 함께 머리 싸매고 고민하다, 잘되면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김 교수가 "어떤 과에선 환자들이 아주 좋아져서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게 쉽지 않은데, 이곳에선 늘 그런 일을 볼 수 있다"며 "고생 끝에 결국 아기를 가진 환자 한 명 한 명이 한 편의 드라마"라고 했다.
분당차병원 난임센터는 전국에 하나뿐인 대학병원 단위의 난임센터다. 다른 대학병원도 산부인과에서 난임 외래 진료를 보는 경우는 많지만, 전문 센터로 운영하지는 않고 있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난임·불임이 환자 개인의 책임이나 결함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남아있어, 환자들이 대형 병원보다 사람이 적은 개인 병원을 선호해서다.
분당차병원 난임센터에 오는 환자 중에는 개인 병원에 몇 년씩 다니다 마지막에 이곳으로 발길을 돌린 이가 많다. 김 교수는 "엄마들이 죄책감이나 부채감을 갖지 말고 최대한 빨리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난임은 증상이 없는 병이다. 남녀 모두에게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원인 불명'이 절반쯤 된다. 대개 나이가 많아 임신이 어려워진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생리 주기가 규칙적인 35세 미만 여성이 피임 없이 1년 동안 아이가 안 생기거나, 35세 이상은 6개월간 임신이 안 되면 난임으로 본다. 35세 미만은 그래도 1년은 기다려볼 만하지만, 35세를 넘기면 더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라는 뜻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난임 환자들이 이런 기한을 훨씬 넘겨서야 병원 문을 두드린다는 점이다. 지난해 차병원 조사에서, 난임 환자들은 임신이 안 되는데도 계속 미루다가 평균 3.17년이 되어서야 병원을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여성들이 늘고 혼인 연령이 늦어지면서 난임이 늘어나는 건 보편적인 현상인데, 아직도 우리나라 난임 환자 중에는 '칠거지악'이라고 자책하는 이조차 있다.
신 교수는 "나이가 만든 불임이 많다"며 "임신이 안 된다고 혼자 끙끙 앓다 병원을 늦게 찾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적절한 시술을 해도 끝내 임신이 어려운 경우들이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빨리 병원에 오는 게 최고"라고 했다.
35세가 넘어 결혼했다면 건강검진 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난소 나이를 측정해보는 것도 좋다고 한다. 당장 임신 생각이 없으면 난자를 동결하는 방법도 있다. 20대 때는 매달 임신이 잘되는 난자가 하나씩 나온다. 30대 초반엔 두 개 중 한 개, 40대가 되면 한 해에 한두 개 정도로 줄어든다.
얼마 전 신 교수를 찾아온 엄마도 결혼 후 7~8년간 혼자 고민하다 44세가 돼서야 병원에 올 결심을 했다. 신 교수는 "몇 년만 빨리 찾았어도 훨씬 수월했을 텐데, 돈과 시간을 많이 쓰면서 마음고생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했다"고 했다.
두 교수는 각각 아이 둘, 셋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아이가 안 생겨 고민하는 환자들이 혹 마음 아파할까 봐, 환자 앞에선 자기 아이 얘기를 안 한다. 김 교수는 "제가 아이를 키워보니 이 행복감을 환자들도 꼭 알게 해주고 싶어 최대한 언니처럼 도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