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A씨는 2017년 회사 사무실 책상에 파우치를 올려놓고 자리를 비웠다. 파우치 안에는 그가 녹음 버튼을 누른 MP3가 들어 있었다. 회사 동료들이 뒤에서 자기를 험담한다고 의심하고 증거를 잡기 위해 '몰래 녹음'을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이 발각돼 A씨는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김형두)는 A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6일 밝혔다.
A씨는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징역형을 받았다. 통비법에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면 처벌하게 돼 있다. 법조계에선 "A씨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휴대전화 등을 통해 대화가 고스란히 녹음되고 외부에 공개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배우자의 불륜을 의심해 차량이나 집 안에 녹음기를 몰래 설치해 아내의 통화 내용 등을 녹음한다면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 돼 처벌된다.
반면 녹음을 한 사람이 대화에 참여한 당사자라면 몰래 녹음을 한다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 '타인 간의 대화'가 아니라 자기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한 것이기 때문이다. 택시 기사가 승객과의 대화를 인터넷으로 생중계했다고 해도 대화에 참여했기 때문에 무죄라는 판례도 있다. 기자가 취재원과의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것도 기자가 '대화 참여자'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업·관공서 등의 내부 회의 참석자가 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회의에서 오간 대화를 녹음했다면 문제가 될까. 법조계 인사들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경우 '자리'에는 참석했지만 '대화'에는 참여했다고 보기 어려워 결과적으로 '타인 간의 대화'를 불법 녹음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의 참석이 사실상 대화 참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어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올 초 대구지법은 보모가 생후 10개월 아기에게 욕설하는 내용을 어머니가 몰래 녹음한 것은 통비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말문이 트이지 않은 아기는 '대화 참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모가 아기에게 한 욕설을 녹음한 것은 온전한 의미의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한 불법으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성형외과를 찾은 여성이 전신마취를 앞두고 스마트폰 녹음 기능을 켜서 수술 중 의사들이 자기 외모를 비하하는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가 재판에 넘겨진 사건도 있었다. 의사들 간 대화를 무단 녹음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여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여성에게 녹음은 전신마취를 앞둔 여성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택한 '자구책'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었다.
합법적 녹음이었다면 이를 공개·배포할 수도 있다. 다만 공개한 녹음 내용이 개인의 사생활이나 명예와 관련됐을 경우 다른 법에 의해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