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김이라고 다 무겁고 느끼한 건 아니에요. 제대로 하면 볶음이나 구이보다 담백하고 깔끔하죠."
3일 서울 소월로 밀레니엄힐튼호텔 일식당 '겐지'의 구민술 셰프가 이렇게 말하면서 갓 튀긴 두릅을 접시에 올려놓았다. 튀김이 맞나 싶었다. 튀김 옷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투명하고 얇다. "밀가루를 체에 세 번 걸러 내요. 아주 고운 입자의 가루만 씁니다. 반죽에 탄산수를 섞어서 시간이 지나도 튀김옷이 눅눅해지지 않도록 하고요. 봄에도 초여름에도 산뜻하게 먹을 수 있죠."
제철 재료를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살짝 데치거나 찌는 것이라고 흔히들 알고 있다. 그러나 최근엔 튀김이 새로운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잘만 튀기면 속재료의 수분이 날아가지 않고 그대로 안에 담기고, 겉면의 바삭함이 더해져 씹는 즐거움이 커진다. 파릇하게 물이 올라 수분이 많은 5월의 제철 재료일수록 오히려 튀김과 잘 어울린다.
두릅·죽순·아스파라거스·잠두콩·달래 같은 5월 채소는 물론이고, 멍게·성게·갑오징어·보리새우·보리멸·다슬기·장어·도다리 같은 바다 생선이나 조개도 튀김으로 즐기면 제격. 튀김 요리 전문점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봄볕 아래 '바삭'
서울 강남구 신사동 '텐쇼'는 작년 8월 문을 연 일본식 튀김 오마카세 전문점이다. 장어뼈나 새우 머리 등 식재료로 생각지 못했던 것까지 튀김으로 내놓으면서 소문 났다. 튀김 위주로 코스를 꾸미지만 기름지거나 느끼하지 않다. 산뜻하고 풍성한 맛이 난다. 이곳 최지영 셰프와 박경재 셰프는 "5월 봄철과 초여름 채소는 수분이 많고 연하다. 이 파릇한 맛을 끌어낼 수 있도록 튀김옷 두께나 기름 온도를 조절한다"고 했다. "아스파라거스나 냉이나 달래는 최대한 얇게 반죽을 묻히고 180도가량에서 짧게 튀겨내죠. 생선은 반면 살짝 도톰하게 반죽을 묻혀줘 속의 수분이 날아가지 않도록 합니다."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입안에 기름 향이 남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 셰프는 카놀라유와 갓 짠 생참깨 기름을 섞어 쓰는 것을 권했다. 포도씨유·올리브유는 향이 강해서 재료의 맛을 가리기 쉽다고. 채소를 잘 먹지 않는 아이에게도 튀김은 효과적이다. "가지나 배추, 애호박처럼 아이들이 싫어하는 채소도 튀겨내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달콤해서 의외로 잘 먹죠."
'겐지'의 구민술 셰프는 "제대로 만든 튀김은 선녀의 날개처럼 얇고 투명하고 아삭아삭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무거운 소스보단 말차소금이나 벚꽃소금 정도만 가볍게 찍어 먹죠. 장어나 도다리, 갑오징어는 볶거나 구운 것보다 튀긴 것이 오히려 더 담백해요." 밀가루 향이 재료 맛을 가리지 않도록 밀가루는 냉장고에서 하루 정도 숙성한 것을 쓴다.
◇탄산수·샴페인과 제격
서울 을지로 롯데호텔 중식당 '도림'의 여경옥 셰프는 "도다리 튀김이나 가자미 튀김이 요즘 한창 맛있을 때"라고 했다. "180도가 넘는 뜨거운 기름에 11~12분 정도 튀겨내요. 바삭하게 튀긴 마늘을 곁들여 먹으면 깔끔하죠. 껍질부터 뼈까지 다 먹어요. 이 봄철의 맛을 고스란히 즐길 수가 있죠." 식빵에 새우를 끼워 튀겨내는 멘보샤를 만들 때 여 셰프는 랍스터를 쓰기도 한다. "랍스터 속살의 향이 진하면서도 달아요. 무겁다기보단 싱싱하고 풍성하게 느껴지죠." 보통 기포가 톡톡 터지는 탄산수나 소다수, 샴페인과 튀김 요리가 잘 어울리지만 향이 맑은 독주와도 나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