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물마시고 있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6일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합동수사본부에서 조사를 받았던 자신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의 당시 진술서 사본을 PDF파일 형식으로 공개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두 사람의 행적을 둘러싼 진실공방 3라운드다. 이번 진술서 사본 공개는 유 이사장이 최근 방송에 나와 1980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합수부) 조사 당시 "구타를 당하면서도 비밀 조직은 노출 안 시켰다"고 말한 것과 달리, 심 의원은 유 이사장이 운동권 내부 동향을 관련 인사 실명과 함께 적시해 77명의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겨눴다고 하면서 비롯됐다. 두 사람의 공방은 결국 누가 먼저 진술서를 썼느냐 공방으로 번졌고, 심 의원이 이날 유 이사장 진술서 작성 시점을 추정해볼 수 있는 진술서 사본을 공개한 것이다. 당시 심 의원은 서울대 총학생회장, 유 이사장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었다.

◇유시민 "진술서 7월에 쓴 것 같다"고 했는데…

심 의원과 유 이사장 간 진실 공방의 핵심은 진술서 작성 시점이다. 유 이사장은 지난 1일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 번외편 '1980년 서울의 봄 진술서를 말할레오'를 통해 "저랑 심 의원은 당시 서울대 학생회 빅3였다"며 "잡혀가는 걸 늘 전제로 했다. 그렇게 잡히면 무엇을 공개하고 무엇을 안 할지 미리 정했었다"고 했다. 또 "제가 그때 서류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심 의원이 공개한 건 자필 진술서다. 제가 추측하기엔 7월에서 한 7월 중순 이후에 쓴 거로 보인다"라며 "심 의원이 잡혀 온 6월 30일 이후 합수부에 재차 불려가 심 의원이 진술한 내용에 맞춰 자술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다만 유 이사장은 "진술서를 너무 많이 썼기 때문에 시점이 정확하지는 않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날 심 의원이 공개한 유 이시장 진술서 작성 시점은 '1980년 6월 12일'이라 적혀 있었다. 유 이시장 진술서는 90쪽 분량으로 '치안본부'라고 인쇄된 종이에 자필로 작성된 것이다. 이 진술서에 적힌 작성 시점에 따르면 심 의원이 6월 30일에 합수부에 불려와 먼저 진술했고, 이후 '미리 정한대로' 자술서를 썼다는 유 이사장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심 의원은 "1980년 6월 11일의 유 이사장의 진술로 인해 행적이 소상히 밝혀진 77명 학우 가운데 미체포된 18명은 그의 진술 직후인 6월 17일 지명수배됐다"라며 "신군부가 의도한 민청협의 복학생을 통한 재학생 시위 교사의 정황증거가 되어 이해찬 씨에 대한 검찰측 핵심 증거로 판결문에도 인용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 이사장이 1980년 당시 고문을 견디며 학우들을 지켰는지, 상세한 검찰측 참고인 진술이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이번에 공개된 진술서 전문을 통해 밝혀질 것"이라며 "유 이사장은 학생회 간부로 공개된 사람들에 관해서만 진술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학생운동권 내부 움직임 등을 진술해 다른 학우들에게 직접적 위협의 칼날이 됐다"고 했다.

◇심·유, '누가 민주화 동지에 칼을 겨눴나' 진실 공방

두 사람의 공방은 지난달 20일 유 이사장은 KBS 예능 프로그램 '대화의 희열2'에 출연해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합수부 등에서 진술서를 쓰게 된 일을 거론하면서 시작됐다. 유 이사장은 이 방송에서 "뜻밖의 글쓰기 재능을 발견한 곳이 합수부"라며 "(진술서를 쓸 때) 누구를 붙잡는 데 필요한 정보와 우리 학생회가 아닌 다른 비밀 조직은 노출 안 시키면서 모든 일이 학생회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썼다"고 했다. 장문의 진술서를 쓰면서 비밀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유 이사장은 당시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연루돼 징역을 살았다.

이틀 뒤인 지난달 22일, 심 의원은 페이스북에 유 이사장이 당시 작성한 자필 진술서 내용을 공개하고 "스물한 살 재기 넘치는 청년의 90쪽 자필 진술서가 다른 민주화 인사 77명의 목을 겨누는 칼이 되었고, 이 중 3명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24인 피의자가 됐다"고 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이 '김대중 일당'의 내란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조작한 사건이다. 유 이사장이 작성한 진술서가 심 의원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뜻이다. 심 의원은 유 이사장의 진술서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2심 판결문에 증거로 적시됐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2일 유 이사장이 "진술서에 감출 것은 감췄고, 부인할 것은 다 부인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심 의원이 "다시 한 번 진실을 왜곡하는 예능의 재능을 발휘했다"고 반박하면서 진실공방 '2라운드'가 벌어졌다.

유 이사장은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에 올린 '1980 서울의 봄, 진술서를 말할레오' 영상에서 "그 진술서를 보면 잘 썼다고 생각한다. 감출 것은 다 감췄고, 부인할 것은 다 부인했다"며 "(진술서를 쓴 이후) 500명 가까운 수배자 명단이 발표됐는데 비밀조직(서울대 농촌법학회) 구성원은 단 1명도 그 명단에 올라가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계엄사 합동수사부에서 쓴 진술서에 신계륜(당시 고려대 학생회장), 이해찬(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장) 등 (당국이) 다 아는 것만 썼다. 다른 내용도 비밀이 아닌 별 가치 없는 진술이었다"며 "김대중 총재의 조종을 받아 시위했다는 진술을 계속 요구받았지만 알지 못한다고 버텼다"고 했다.

그러자 심 의원은 같은 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유 이사장은 진술서에서 총학생회장단이나 학생지도부 외에 복학생 등 여타 관련자와의 사적 대화까지 상세하게 진술해 수사 초기 신군부의 눈과 귀를 밝혀준 셈이 됐다"고 적었다. '감출 것을 감추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어 그는 "유 이사장의 진술 탓인지 1980년 6월 11일자 유시민 진술서에 언급된 77명 중 미체포자 18명이 6월 17일 지명수배됐고, 이 중 체포된 복학생 중 일부는 이해찬에 대한 공소사실의 중요 증거가 됐다"고 했다.

또 그는 "유 이사장은 '자신의 진술서는 심재철이 체포된 후에 7월 심재철 것을 가져와 강요해 쓴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실이 아니다"라며 "내 유죄 핵심증거로 재판부에 제출된 유시민의 합수부 진술서는 내가 체포(1980년 6월 30일)되기 전인 6월 11일과 12일 작성됐다"고 했다. 유 이사장의 진술서가 자신이 체포되는 데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그러자 유 이사장은 유튜브 방송에서 "심 의원이 본인의 진술서를 공개해봤으면 한다.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 당시 군사법정에 제출된 심 의원의 자필 진술서와 진술조서, 법정 발언을 날짜순으로 다 공개해보면 제 진술서에 나온 내용이 누구 진술서에 제일 먼저 나왔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심 의원은 "동의한다"며 "아울러 공판 속기록도 함께 공개돼야 한다. 유 이사장이 먼저 자신과 가까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피고인 유족이나 피고인들을 설득해 공판 속기록 공개 동의를 얻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6일 공개한 1980년 '서울의 봄' 합동수사본부 수사 당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자필 진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