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에 있는 벤처캐피털 'DBL(Double Bottom Line) 파트너스'. 최근 이 회사 사무실을 찾았는데, 큼지막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전기차가 충전되는 모습이다. 이 회사 마크 페루츠 파트너가 설명을 시작했다. "전기차 '테슬라'의 옛 모습입니다.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13년 전, 일론 머스크가 자금 모으기에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가 저 회사에 투자했지요." 괴짜 사업가가 만든 전기차에 투자를 결단한 이유로 그는 두 가지를 들었다. 전기차가 대기오염을 줄일 것 같아서. 그리고 주가도 많이 오르리라고 판단해서. 이 회사 이름의 뜻인 '두 가지 기준선(Double Bottom Line)'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야 느낌이 확 왔다.
DBL은 미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확산하는 투자 기법인 '임팩트 투자'의 대표 주자다. 임팩트 투자란 사회와 환경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를 고려해 투자처를 정하는 기법을 뜻한다. 돈도 벌면서 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행사하겠다니, '두 마리 토끼 잡기'를 노리는 것이다. 문 닫을 뻔한 테슬라는 직원 수 3만명, 시가총액 54조원의 세계 최대 전기차 기업이자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DBL 파트너스도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은 물론이다.
◇"투자도 하고 사회도 긍정적으로"
경제학도인 나는 '돈'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많다. 투자나 소비를 할 때 이왕이면 사회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힘을 보탤 수 있다면 정말 보람찬 일이라고 종종 생각한다. 요즘 '밀레니얼(1980년대 초~2000년대 초에 태어난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에 능숙한 세대)'이라 불리는 전 세계 우리 또래들이 흔히 하는 생각이다. 뉴욕에서 만난 대니얼 새거(20·뉴욕주립대 컴퓨터공학과)는 "나는 해안가 마을 출신인데 플라스틱 쓰레기가 계속 늘어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에 투자하려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회사 '누빈'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의 36%가 기업의 부적절한 행태 때문에 주식을 판 적이 있다고 답했다. 다른 세대는 이 비율이 절반 수준이었다.
◇실리콘밸리와 월가도 임팩트 투자
'PC(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흠모'라고도 여겨지는, 미래 소비자이자 투자자인 밀레니얼들의 행동 양식은 전 세계의 돈이 모인다는 미국 실리콘밸리와 월가(街)의 지형을 뒤집어놓고 있었다. GIIN(국제 임팩트 투자 네트워크)이 이달 초 발표한 세계 임팩트 투자 규모는 약 5020억달러(약 573조원)로 한국 코스피 시가총액의 40% 수준에 이른다. 2015년 약 17조원(크레디트스위스 집계)의 약 33배로 불어났다. 임팩트 투자가 빠르게 확산하며 옥석(玉石) 가리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월드뱅크 산하 국제금융공사(IFC)는 지난 12일 '임팩트 투자 원칙'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필립 르우에르 사장은 임팩트 투자에 대한 수요가 약 26조달러(약 3경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한때 탐욕의 화수분처럼 여겨졌던 미 동부 월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GIIN 아미트 부리 CEO는 "우리는 300여개 기관과 40여개 나라에 임팩트 투자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했다. GIIN 회원사엔 JP모건·모건스탠리·UBS·도이체방크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금융사들이 올라 있었다.
◇밀레니얼이 열광하는 파타고니아 조끼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월가 금융맨들이 입은 '과잠(과 이름을 적은 점퍼)' 같은 조끼들이 보였다. 친환경 정책으로 이름난 '파타고니아' 브랜드의 단체복이 많았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후 파타고니아가 앞으로는 친환경 등 자사 철학에 잘 부합하지 않는 회사(일부 금융회사들)엔 단체복을 안 맞춰주기로 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일부에선 '유난스럽다'란 비아냥이 나올 법도 한데, 밀레니얼 세대가 열광해 파타고니아 매출은 나날이 불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 회사는 비상장사임에도 임팩트 투자자가 가장 좋아하는 회사로 자주 거론된다.
"임팩트 투자를 통해 사회·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지갑 속에 투표용지를 가진 셈 아닌가요? 큰돈이 아니어도, 투자를 통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정말 '쿨(cool·멋지다)' 하다고 생각해요!" 뉴욕의 21세 대학생 저스틴 리의 말이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임팩트 투자
친환경 같은 사회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수익도 얻고 사회적 가치 창출에도 기여하자는 취지이다. 좋은 의미에서 사회에 충격(impact)을 줄 수 있는 투자를 지향한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 친환경 아웃도어 의류업체 '파타고니아', 건강한 학교 급식을 표방하는 '레볼루션 푸드', 온라인 무료 강의 사이트 '칸 아카데미', 환경보호용 지도를 만드는 민간 인공위성 서비스 업체 '플래닛 랩스' 등에 대한 투자가 대표적이다.
[미탐100 다녀왔습니다] "이 착한 투자가 성공한다면…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임팩트 투자도 수익률이 우선이에요. 다만 투자 기간이 장기일 뿐입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는 기업이 멀리 내다보면 더 나은 수익을 낼 거라는 믿음과 계산이 있습니다."
이윤 추구가 절대 가치인 세계 금융의 '심장' 뉴욕에서 이타적이기도 한 임팩트 투자가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이 '착한 실험'이 성공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바뀔지 떠올려 보니 그럴 수밖에요.
일주일 동안 미국 동·서부를 횡단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임팩트 투자를 적극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투자자들이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는 기업, 제3세계 노동자들을 핍박하지 않는 기업을 찾아 대중에게 알리면 '지속 가능한 성장'이란 화두에 눈뜬 밀레니얼 세대들이 환호하는 식이었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하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단어가 '보이지 않는 손'이었습니다. 각자 욕망을 추구하면 좋은 결과는 알아서 따라온다는 개념이지만, 노동·환경·투명성 분야 앞에서는 무력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선 임팩트 투자가 이를 넘어서는 중입니다. 이번 탐험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임팩트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생겼습니다.그 길을 찾아 넓히는 데 일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