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으로 물든 전북 고창 학원농장 청보리밭 사이를 걷고 있는 '팜팜시골버스' 참가자들. 팜팜시골버스는 고창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와 농가 맛집, 농촌 체험까지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시티투어다.

낯선 도시의 여행 정보를 수집하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다. 지도를 찾는 불편, 길을 헤매는 시행착오와도 안녕이다. 이 녀석에 올라타면 대표 관광 명소들을 '한 방에' 돌아볼 수 있다.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이 녀석은 '시티투어버스'다. 전국 70곳에서 운영 중인 시티투어 코스는 275가지에 이른다. 그저 그런 한정식 차림처럼 뻔한 메뉴, 뻔한 코스, 뻔한 설명 아니냐고? 낡은 편견이다. 최근 들어 시티투어버스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신선한 스토리와 디자인, 뮤지컬, 공연, 이색 체험을 담은 테마형 시티투어로 진화하고 있다.

버스가 공연장, 승객을 관객으로

"내리실 분은 빨리 내리시고, 내리실 분 안 계시면 오라이~!" 오전 10시, 버스 안내양의 말과 함께 버스가 출발하면 100년의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 광주 100년의 이야기는 1930년부터 2030년까지 광주의 숨은 이야기와 장소를 찾아가는 광주 시티투어버스의 테마형 버스다. 지난해 첫선을 보였고 지난 6일 올해 첫 운행을 시작했다.

오웬기념각에서 공연 중인 배우들. '광주 100년의 이야기'는 시간 여행을 주제로 딱딱한 설명 대신 노래와 공연을 가미한 테마형 시티투어버스다.
시간 여행을 안내하는 '광주 100년의 이야기' 버스의 가이드이자 배우, 가수이기도 한 '나비'역의 배우가 양림쌀롱에서 연기 중이다.

'나비'는 이 시간 여행을 안내하는 가이드이자 배우, 가수다. '폴'이라는 청년과 함께 시공간을 넘나들며 때로는 코믹하고 때론 눈물 나는 상황극과 노래를 들려준다. 시간 여행의 첫 코스는 양림동. 20세기 초 광주의 종교와 문화, 의료는 물론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경성 패션'으로 변신한 나비의 안내에 따라 양림쌀롱, 이장우 가옥, 양림교회, 오웬 기념각, 펭귄마을까지 걸으며 과거의 흔적을 더듬었다.

양림동 투어가 끝나면 1980년 5월로 이동한다. 목적지는 5·18 민주화 운동이 펼쳐진 오월광장. 최후의 격전지였던 옛 전남도청 건물과 희생된 시민들을 임시로 안치한 상무관, 유네스코 민주인권로로 지정된 금남로 등 역사 현장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옛 전남도청 앞에서 나비가 광주 출신 가수 김정호의 '하얀 나비'를 부를 땐 가슴이 먹먹했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2030년 광주의 미래를 만나는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 지하 건축 방식을 택했고 빛이 드는 개방적 공간으로 설계돼 색다른 느낌을 준다. 2시간 남짓한 시간 여행이 끝나자 두 배우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전주에서 온 박충현(50)씨는 "딱딱한 설명보다 시대를 잇는 스토리와 두 배우의 연기, 노래가 더 깊이 있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온 직장인 허지혜(29)씨는 "개별적으로 다 가본 곳인데 이렇게 둘러보니 새로운 여행을 한 기분"이라고 했다.

광주 100년의 이야기는 매주 토요일 광주 종합버스터미널 32번 홈에서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출발한다. 요금은 1만원. 5월부턴 매주 일요일 5·18 민주화 운동을 주제로 한 '오월의 버스'도 운행한다. 예매와 자세한 내용은 광주 시티투어버스 홈페이지에서 확인.

전남 여수를 재발견하고 싶다면 시간을 달리는 버스커를 탈 일이다. 2층 버스를 타고 낭만적인 여수 야경과 뮤지컬, 버스킹 공연까지 즐길 수 있다. 2017년 8월 운행을 시작한 뒤 여수 여행의 필수 코스로 떠올랐다. 2층 버스를 무대 삼아 펼쳐지는 뮤지컬은 여수를 배경으로 고려와 조선, 현재로 이어지는 '카멜'과 '리아' 두 요정의 사랑 이야기다. 달콤한 로맨스가 끝나면 탑승객들은 소호동동다리에서 내려 여문문화거리까지 산책하며 여수 밤바다를 즐긴다. 여문문화거리에서 기다리는 건 버스킹 밴드. 미리 신청하면 사랑스러운 세레나데를 불러주는 프러포즈 이벤트도 가능하다.

2층 버스를 타고 달리며 여수의 야경과 버스킹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달리는 버스커'.

다시 버스에 오르자 2층 버스는 버스킹 밴드의 무대가 된다. 낭만적 음악과 더불어 스쳐가는 돌산대교와 거북선대교 모습이 더 아름다워질 때쯤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 연주가 시작된다. 모두의 주제곡처럼 입을 모아 "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를 흥얼거리다 보면 어느새 투어가 끝난다.

올해는 오는 26일 운행을 시작한다. 11월 16일까지 매주 금·토요일 오후 7시 30분에 이순신광장에서 출발한다. 요금은 2만원. 26일부터 다음 달 11일까지는 '봄 여행 주간'을 맞아 50% 할인 혜택을 준다. 5월 3일은 여수 거북선축제로 운행하지 않으니 참고할 것. 예약은 여수시 통합예약사이트.

백제 의상 입고 퀴즈를 푼다

부여 백시달EQ버스는 어렵고 지루한 역사 여행을 거부한다. '백제의 시간을 달린다'와 EQ(교육용 퀴즈)를 합친 백시달EQ버스는 백제의 수도이던 부여의 주요 유적지를 둘러보면서 퀴즈를 푸는 체험형 시티투어다. 지난해 운행을 시작해 반응이 뜨겁다. 백시달 EQ버스는 다음 달 11일부터 오는 9월까지 총 22회 운영된다.

시티투어가 시작되는 부소산성 관광 주차장에 도착하면 구태여 찾지 않아도 백시달 EQ버스가 눈에 들어온다. 정림사지5층 석탑, 백제대향로, 오악사, 계백 장군 등 백제 문화재와 인물로 장식한 버스가 멀리서부터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버스 탑승 전엔 백제 시대 의상으로 갈아입는다. 낯설지만 색다른 체험에 아이들은 신이 난다.

백제를 상징하는 인물과 유물로 장식된 부여 '백시달EQ버스'.
부여 백시달EQ버스 참가자들이 정림사지 5층 석탑으로 향하고 있다.

부소산성을 출발해 정림사지 5층 석탑과 능산리 고분군, 백제문화단지, 낙화암을 거쳐 부소산성으로 돌아오는 2시간 30분 일정이 시작되면 좌석 앞 모니터에선 미니 드라마가 재생된다. 백제의 서동이 우연히 현대로 오게 되면서 그를 다시 선화공주 곁으로 돌려보내는 방법을 찾아가는 스토리. 이 과정에서 부여의 주요 유적에 관한 문제가 출제된다. 정답은 좌석에 설치된 기계로 직접 입력한다. 지루할 틈이 없다. 최태성 한국사 강사가 출제부터 정답 해설까지 쉽고 재밌게 들려준다. 버스에서 내려 직접 유적을 둘러보며 정답을 한 번 더 확인한다. 직접 체험하며 흥미롭게 역사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요금은 성인 1만2000원, 어린이 9000원. 백시달 EQ버스의 정확한 일정은 홈페이지에서 확인.

3·1운동 100주년이라는 의미를 더한 시티투어버스도 있다. 부천시티투어는 올해부터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운영되는 '판' 코스에 안중근공원을 새로 넣었다. 2009년 중국 하얼빈에서 기증받은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세운 곳이다. 이 추모 공원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함께 만세 운동을 재현해본다. 유관순 열사와 독립운동 위인들을 연상시키는 복장을 입고 다 같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칠 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뒤 직접 낭독해볼 수도 있다. 5월부턴 안중근 의사의 명언들을 골라 손바닥 도장을 찍는 체험이 추가된다.

안중근공원에서 태극기를 들고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부천시티투어 참가자들.

부천 시티투어는 '판' '타' '지' '아' 네 코스로 운영된다. 판 코스는 오전 10시 부천시청 시티투어버스 승강장을 출발해 안중근공원과 고강동 선사 유적지, 교육 박물관, 옹기 박물관을 둘러본다. 요금은 성인 7000원, 초·중·고생 6000원, 미취학 아동과 65세 이상은 5000원. 일정과 코스는 부천문화원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천안 시티투어는 올해 '나라 사랑 코스'를 신설했다. 매주 일요일 운행하는 이 코스는 유관순 열사 생가·사적지와 아우내 만세운동 기념 공원, 이동녕 선생 기념관, 독립기념관을 돌아보며 100년 전 3·1운동의 의미를 짚어볼 수 있다. 시티투어버스는 오전 10시 천안 터미널, 오전 10시 10분 천안역에서 출발한다. 요금은 성인 4000원, 어린이 2000원. 예약은 천안역 관광안내소와 천안시 통합예약시스템에서 받는다.

올해 신설된 천안시티투어 '나랑사랑코스' 참가자들.

농촌 체험에 판소리까지

시티투어버스는 이제 시골길도 달린다. 전북 고창에는 농촌 체험에 특화된 시티투어버스가 있다. 지난해부터 운행을 시작한 팜팜시골버스가 그 주인공. 농촌 체험과 지역 맛집, 고창의 명소까지 돌아볼 수 있는 하루 코스로 올해 11월까지 매주 토, 일요일 운행된다. 지난 13일 팜팜시골버스의 첫 일정은 딸기 수확 체험이었다. 하우스에서 딸기를 직접 수확해 마음껏 맛보고 500g은 따로 가져갈 수 있다. 농촌 체험은 5월까지 수확 가능한 딸기를 비롯해 블루베리, 고구마 등 계절과 작물에 따라 달라진다.

시골 버스의 느낌을 살린 고창 '팜팜시골버스'.

팜팜시골버스의 매력 중 하나는 고창의 농가 맛집에서 든든하게 점심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점. 이날 메뉴는 복분자 닭갈비였다. 고창의 특산물인 복분자 진액을 곁들였다는 닭갈비는 매콤하면서 담백하다. 오후에는 철쭉으로 붉게 물든 고창읍성과 청보리밭 드넓은 학원농장을 둘러봤다. 학원농장에선 20일부터 다음 달 12일까지 청보리밭축제가 열려 초록의 절정을 만끽할 수 있다. 계절별로 고창의 축제도 함께 돌아볼 수 있게 맞춤 코스를 운영한다. 김수남 고창농촌관광팜팜사업단장은 "고창만의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에 농촌과 갯벌 체험까지 할 수 있게 확대할 예정"이라며 "판소리 등 색다른 요소를 추가한 투어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매주 토요일은 오전 10시 익산역에서 출발한다. 기차 여행으로 서울에서도 이용이 편하다. 일요일엔 광주 문화예술회관 후문에서 오전 9시 30분 출발한다. 요금은 익산역 출발은 2만원, 고창터미널과 광주 출발은 1만8000원이며 점심이 포함돼 있다. 변경되는 일정은 고창 농촌관광팜팜사업단 홈페이지에서 확인. 기차 여행 상품은 해밀여행사로 문의하면 된다.

이천 시티투어는 수도권에서 농촌 체험이 가능한 시티투어버스다. 지난해부터 이천의 명소와 농촌 체험을 묶어 세 코스로 운영된다. 기본 코스(시립박물관~이천 농업테마공원~덕평 공룡수목원), 체험마을 코스(돼지박물관~이천 나드리 체험마을~민주화 운동 기념 공원), 프리미엄 코스(도자기 만들기 체험~이천 쌀 한정식~도자예술 마을~롯데프리미엄아울렛) 등이며 다음 달 4일과 11일에 체험 마을 코스 투어가 예정돼 있다. 이천의 체험 마을 여섯 군데 중 한 곳을 방문해 농촌 체험과 점심식사를 즐긴다. 이천 시티투어는 경강선 이촌역에서 9시 30분에 출발한다. 20인 이상 모이면 투어가 진행된다. 25인 이상 단체는 원하는 날짜와 코스에 맞춰 픽업 서비스를 제공한다. 요금은 기본 코스 1만9900원, 체험 마을 코스 2만1500원, 프리미엄 코스 3만50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