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월19일 조선일보 사회면에 실린 고려대생 피습장면. 시민혁명의 결정적 도화선이 된 이 사진은 정범태기자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단독 촬영한 사진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가 된 4.19 혁명이 일어난 난리 바로 오늘입니다. 1960년 3월 15일엔 제 4대 대통령선거와 제 5대 부통령 선거가 있었지만, 개표조작에 의한 부정선거로 치뤄졌습니다.
부정선거로 인한 국가 신뢰도는 떨어졌고 국민들은 분노했습니다. 급기야 4월 11일 마산 시위 진압 당시 경찰이 쏜 최류탄이 머리에 박혀 바다에 버려진 마산상고 김주열 군의 시신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4월 18일 고대생들이 시위를 마치고 귀가하던중 폭력배들에 의해 피습을 당한 조선일보 정범태 기자의 사진이 신문에 실리면서 경찰의 과잉진압과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 등이 이어지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로 이어지게 됩니다.
1960년 4월11일 4.19혁명의 도화선 마산 해안에서 김주열군의 시체. 1960년 4월18일 수많은 시민들과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1960년 4월18일 청진동에서 경찰과 충돌한 고등학교학생 시위 대원. 60년 3월13일 낮 시내에서 시위를 하다가 형사에게 연행되여 가는 고등학생들. 학생들이 4.19 혁명 시위를 진행하기 위해 모여 "학원에 자유를 달라"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헌병들의 출동한 가운데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4.19의 피를 모독하지 말라며 연좌 시위를 하고있다. 60년 3월13일 서울시 회관 2층에서 전단지를 뿌리자 한 학생이 경찰에 쫒기고 있다. 4월6일 시청앞에 모인 시위대. 천여명의 민주당원과 시민이 합세하여 3.15부정선거 규탄 시위 광경. 국민학교(초등학교) 어린이들도 어깨동무를 하며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시위를 하다 연행되어온 시민들이 경찰서에 모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