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워싱턴에 근무하는 미 주요 매체 기자 10여 명이 세미나 참석 및 취재차 서울에 왔다. 이들과 함께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 기자가 "잘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며 "왜 한국 외교부 공식 홈페이지에는 온통 '비공식' 자료밖에 없느냐"고 질문했다. 한국 정부의 외교 활동과 정책 방향을 알기 위해 외교부의 영문 보도 자료·성명서를 자주 보는데, 문서마다 '언오피셜 트랜슬레이션(unofficial translation·비공식 번역)'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는 것이다.
외교부가 트위터나 인스타그램도 아니고 공식 홈페이지에 그렇게 무책임하게 자료를 올릴 리가 없다면서 사실 확인을 위해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첫 페이지에 강경화 장관이 각국 고위 인사와 악수하는 사진과 함께 회담 내용을 정리한 영문 자료가 올라와 있었다. 자료 수십 건을 열람해보니 외국 기자 말대로 대부분의 문서 맨 마지막에 '비공식'이란 단어가 적혀 있었다. 민망했다. 외국 기자에겐 "다른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에둘러 말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외교부 관계자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 "외국인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공식'이란 단어는 함부로 쓰는 게 아니다"라고도 했다.
하지만 일본, 중국 외교부는 다르다. 이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각종 외교 활동에 관한 영문 자료에서 '비공식'이란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지난 2월 개최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 대한 우리 외교부 보도 자료엔 '비공식 번역'이란 꼬리표가 어김없이 달렸지만, 일 외무성 자료엔 없었다. 일 외무성 당국자가 기자들과 자유롭게 질의응답한 내용을 영문 번역한 문건에만 '이건 오직 참고 목적으로 외부 업체가 임의로 번역한 것입니다'라고 쓰여 있을 뿐이었다. 우리 외교부는 기자와 질의응답한 내용을 번역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 외교부가 최근 영문 자료에 '발칸 국가'라고 잘못 표기했던 '발트 국가' 라트비아도 외교 영문 자료에 '비공식'이란 단어를 달지 않는다.
외교부가 대외 문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피하려고 이랬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최근 외교·의전 실수는 이렇게 작은 일을 설렁설렁 적당히 넘기다가 생겼다. 지난달 대통령은 말레이시아 순방 중에 엉뚱한 외국어 인사말을 했고, 얼마 전 스페인과 차관급 회의를 하면서 '구겨진 태극기'를 사용하는 망신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강 장관은 최근 기강 해이 문제를 지적하면서 외교관들에게 "프로페셔널리즘을 가지라"고 했지만, 말로만 되는 건 아니다. 대외 문건에 달린 무책임해 보이는 '언오피셜'이란 꼬리표부터 떼고, 진정한 '프로 정신'을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