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당신도 스윽 훑고 가셔요…추억할 그 밤 위에 갈피를 꽂고선/ 남몰래 펼쳐보아요.'

유재하 노래가 아니다. 1992년생 원숭이띠 다섯이 모인 밴드 '잔나비'의 신곡 가사. 지난달 13일 2집 앨범 '전설'로 돌아온 잔나비가 대중음악계를 접수했다. 방송 한 번 안 타고 음원 순위 1위에 올랐고, 처음 여는 전국 투어 콘서트를 전석 매진시켰다. 잔나비는 원숭이의 순우리말이다.

신체 나이는 20대이지만 감성은 50~60대. 레드제플린, 퀸, 비틀스를 즐겨 듣고 1950~70년에 만들어진 악기로 연주한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옛날 감성을 밴드 음악으로 풀어낸 레트로 밴드"라고 평했다.

세련된 복고풍 음악으로 '한국의 비틀스'라 불리는 잔나비를 지난달 29일 대구에서 만났다. 공연장 앞에 일렬로 선 멤버들은 온몸으로 '복고'를 발산했다. 커다란 선글라스에 나팔바지, 뽀글대는 파마머리까지. 앨범 타이틀곡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는 벅스뮤직 1위에 올랐다. '장기하와 얼굴들' 이후 인디밴드가 음원 순위 1위에 오른 건 처음이다. 아이돌 공세에도 멜론과 지니뮤직 차트에서 10위권을 유지한다. 기타를 맡은 김도형은 "좋아하는 걸 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밴드 잔나비는 “우리가 외치는 ‘록앤롤’은 열심히 살자는 뜻”이라며 “잠자는 시간 빼고는 음악만 생각한다”고 했다. (왼쪽부터) 드러머 윤결, 베이시스트 장경준, 보컬 최정훈, 키보드 유영현, 기타리스트 김도형.

2014년 데뷔 땐 유행에 맞춘 히트곡을 만들려고 했다. 마룬5 노래를 흉내 내기도 했다. "안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2016년 첫 정규 앨범부터는 그냥 좋아하는 음악을 하기로 했다. 진한 올드팝 스타일의 곡들이 탄생했다. 1990년대생들이 1970~80년대 음악에 꽂힌 이유는 뭘까. 베이스 장경준은 "부모님 차 뒷좌석에 앉아 들었던 음악이 그런 것들!"이라고 했다. 요즘은 1960년대 초 서프 음악 유행을 이끈 미국 록밴드 '비치 보이스'를 많이 듣는다고 했다.

잔잔하고 아기자기한 가사도 잔나비만의 특징이다. 2집 앨범 중 영어로 된 구절은 딱 두 곳뿐. 작사를 전담하는 보컬 최정훈은 "한글로 생각하고 말하는데 우리말로 가사 쓰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작업실은 분당에 있다. 분당구의 중고교에서 학교 밴드를 하다 뭉친 데다 홍대 인디계에 발을 딛기가 꺼려졌다. 최정훈은 "어디든 우리 음악을 할 수 있는 곳이면 된다고 생각했다"며 "분당엔 우리밖에 없으니 더 똘똘 뭉쳤다"고 했다. 분당의 교육열은 밴드의 색깔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록 밴드라면 가출 한 번은 했을 법하지만 이들은 "부모님 말 잘 들으면서 용돈 받아 밴드 활동 했다"며 웃었다. 지금도 최대 일탈은 "짬뽕 먹고 사우나 가는 것"이라고 한다.

이젠 반주만 들어도 '잔나비 노래'를 알아챌 수 있지만 2013년 엠넷 '슈퍼스타K'에 출연했을 땐 처절하게 무너졌다. 심사위원이었던 윤종신이 "어떤 음악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잔나비를 탈락시켰다. 이후 '열심히 음악하는 밴드'가 됐다. 최정훈은 "'노력충'이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우리를 비웃는 것 같아서"라고 했다. 이번 타이틀곡도 도입부만 한 달간 만들었다. 김도형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수백 가지 시도를 했다"고 했다.

20대에 이미 음악계를 평정한 이들의 목표는 뭘까. "언젠가부터 김광석·유재하·산울림 같은 우리 음악의 명맥이 끊겼는데, 우리가 그 뒤를 잇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