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3세들, '그들만의 마약 범죄' 잇따라
해외유학 때 첫 경험...죄의식 낮은 게 문제
국제우편·SNS·다단계 거래로 법망 피해
경찰 "美 등 합법화 지역 늘어 한국도 비상"

국내 굴지 대기업인 현대·SK그룹 창업주 손자들이 최근 마약 투약 혐의로 잇따라 적발됐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재벌 3세’들이 마약 범죄에 빠져드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이 마약사건들은 이른바 ‘사회지도층’ 자제들의 최신 마약 유통 트렌드를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해외유학을 할 때 처음 마약을 접했고, 고가의 액상 대마를 선호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판매책·공급책과 연락을 취하며 단속망을 피해간 것도 다들 비슷하다. 한 마약 수사 담당자는 "이들의 범행 수법은 이른바 ‘G·P·S(Global·Price&Post·Social media)’라고 불리고 있다"며 "최근 이런 수법이 일반인에까지 널리 퍼져 ‘마약 대중화’가 우려될 정도"라고 말했다.

대마 구매 혐의로 지난 1일 입건된 SK그룹 창업자 고(故) 최종건 회장의 손자 최모(31)씨가 인천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들어서고 있다. 같은 혐의로 입건된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의 손자 정모(29)씨는 현재 해외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경찰청 마약수사대에 따르면 현대·SK가(家) 3세인 정모(29)씨와 최모(31)씨는 마약공급책 이모(27)씨에게 고농축 액상 대마(대마 카트리지)를 구입해 흡입한 혐의로 지난 1일 경찰에 입건됐다. 공급책인 이씨도 상당한 재력가 집안 출신으로, 그의 휴대전화엔 다른 부유층 자제의 연락처와 마약을 거래한 정황이 있는 메시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G(Global·해외유학파)
검찰과 경찰에 따르면, 재벌 3세 혹은 부유층 자제들은 중·고교 시절부터 해외유학을 나가는 경우가 많아, 국내에 비해 마약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들이 처음 마약을 접하는 곳이 해외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번에 검거된 정씨와 최씨도 유학파였다. 이들에게 마약을 공급해 온 이씨도 경찰에서 "유학 중 정씨와 최씨를 알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의 휴대폰 등에서 확인된 사람들 대부분이 유학 때 알게된 사람들이었다"며 "유학생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아 마약 합법화 지역이 아니라도 쉽게 마약을 접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이 주로 투약한 ‘액상 대마’는 대마의 환각 성분을 농축한 것이다. 미국 워싱턴·오레곤·콜로라도 등 10개 주(州)에서는 작년 초부터 대마가 오락용으로 합법화됐다. 이후 대마는 투약이 편한 액상 전자담배나 쿠키·젤리 같은 형태로 2차 가공돼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다. 정씨와 최씨는 액상 대마 카트리지를 전자담배에 끼워 흡입했다고 전해졌다.

작년 초 북미 일부 지역에 ‘오락용 대마’가 합법화 이후 국내 유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신종 마약 ‘액상 대마(일명 대마 카트리지)’. 환각 성분인 THC가 농축돼 일반 대마초보다 강력한 환각 효과가 있지만, 특유의 냄새가 적어 단속이 어렵다.

인천본부세관에 따르면 ‘액상 대마'의 국내 밀반입은 작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4개월 동안 모두 79건, 3.6㎏이 적발됐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적발된 45건, 2㎏보다 훨씬 많았다. 액상 대마를 포함한 전체 마약류 압수 현황을 보면 2017년 35.2kg에서 지난해 298.3kg으로 8.5배나 늘었다.

유학파들 마약 범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죄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북미·유럽 국가의 경우 한국보다 마약에 관대한 곳이 많아 유학생들이 마약에 대한 죄의식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마약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으니 범죄가 아니고, 오히려 이를 처벌하는 국내법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한다"고 했다.

P(Price & Post·가격 & 국제우편)
재벌가(家) 손자들인 정씨와 최씨가 흡입한 '액상 대마'는 유럽에서 재배된 최고급 대마로 만들어 고가(高價)다. '액상 대마'는 1g당 시가 15만원 정도. 담배처럼 피우는 대마 건초보다 5배 이상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환각성도 일반 대마초보다 40배 이상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만의 마약'이라고도 불린다. 경찰 관계자는 "액상 대마는 태워서 피는 대마초에 비해 특유의 냄새가 적어 대마를 흡입했는지 주변 사람들이 알아채기가 어렵고, 대마잎을 갈아야 하는 '그라인더'나 담배 종이 등이 필요 없어 훨씬 간편하다"고 했다.

지난해 9월 SPC그룹 3세인 허모 전 SPC 부사장은 액상 대마를 구입·흡연한 혐의로 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허 전 부사장은 미국 교포 전달책과 공모해, 액상 대마를 국내에 들여와 수차례 흡연하다가 적발됐다.

마약 유통은 주로 국제우편을 통해 이뤄진다. 관세청에 따르면 작년 밀반입된 마약의 89.7%가 우편물·화물을 통해 들어왔다. 관세청 관계자는 "작년에 유학생이 많은 미국 캘리포니아 등에서 대마가 합법화되면서 여러 종류의 신종 마약류 반입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마약 밀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받고 복역 중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유시춘 EBS 이사장의 아들 신모(38)씨도 스페인에서 우편을 통해 대마를 밀반입했다가 들통났다. 신씨는 2017년 10~11월 외국에 거주하던 사람과 공모해 대마 9.99g을 스페인발 국제우편에 숨겨 받으려고 하다가 몰래 위장 수사에 나선 검찰에 검거됐다. 그가 여성 가발을 쓰고 핸드백을 맨 채 여장을 하고서 우편함 주변을 서성이는 모습이 CCTV에 찍히기도 했다.

◇S(Social media·소셜미디어)
이렇게 국내로 반입된 마약의 국내 유통 경로는 주로 소셜미디어다. 마약 거래는 구매자와 판매자가 직접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중간 중간에 공급자나 전달자를 끼우거나 이씨처럼 구매를 대신해주는 전문 공급책을 두기도 한다. 사실 판매책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거래가 성사되는 것이 마약이다.

이번에 적발된 정씨와 최씨도 비슷하다. 공급책 이씨에게 보안이 강한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마약 구매 의사를 전달하고 돈을 보내면, 이씨는 이 돈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뒤 소셜미디어를 통해 판매책에게 접근했다. 판매책은 특정 장소에 마약을 숨겨놓은 뒤 이씨가 찾아가도록 했다. 일명 ‘던지기 수법’으로 액상 대마를 구입했다고 이씨는 진술했다.

이처럼 신원을 파악하기 쉽지 않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마약 거래는 이미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퍼져있다고 검찰과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2월 클럽 버닝썬의 마약 사태를 계기로 집중 단속을 벌인 결과 한 달 만에 무려 520여 명을 붙잡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나 늘었다.

구글 등 인터넷 포털에 마약을 지칭하는 은어를 검색하면 수십 개의 판매 홍보글이 뜬다. 추적이 어려운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구매 의사를 밝혀달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 범죄는 원래 암수율(暗數率·드러나지 않은 범죄 비율)이 높은 만큼 새로운 수법에는 새로운 수사 기법으로 끈질기게 수사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면서 "국제우편과 소셜미디어 등에 대한 제도적, 행정적 보완 장치도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