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중구 정동 일대에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대한제국의 길'이 전문가들의 반대에 부딪혀 애초 계획보다 대폭 축소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시는 지난달 옛 국세청 남대문별관 터에 개관한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을 거점으로 덕수궁, 옛 러시아공사관, 선원전 터, 성공회성당을 한 바퀴 도는 2.6㎞짜리 탐방로를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자문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대한제국이라는 명칭을 넣는 것이 부적절하다" "문화재청에서 지난해 잘못 복원해 비판을 받은 '고종의 길'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지난 2016년 10월 '대한제국의 길'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2018년까지 덕수궁 일대에 대한제국의 역사적 명소를 탐방하도록 5개 코스를 만들고, 코스 길바닥엔 대한제국 국장(國章)이었던 오얏 무늬를 새긴다는 계획이었다. 미국 보스턴의 '프리덤트레일' 같은 대표적인 역사 탐방로로 만들 예정이었다.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15층에 정동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광무전망대'를 만들고 주차장엔 우리나라 최초 커피 판매점인 손탁호텔 분위기를 살린 카페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시는 "대한제국의 역사를 돌아보고 국권 회복과 국민 권력 시대를 향한 대한민국의 길을 찾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업은 2년 넘게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시 관계자는 "여러 역사학자, 건축학자들에게 자문한 결과 명칭, 고증 등의 이유로 코스를 조성하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말했다. 결국 '대한제국의 길' 명칭은 '정동 근대역사길'로 수정됐다. 자문에 참여했던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그 길이 대한제국의 길이면 조선왕조의 길은 어디고 대한민국의 길은 어디냐"며 "길이란 것은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의 역사인데 왕조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명법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시에 전했다"고 말했다.
역사적 고증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학연구소의 한 박사는 "애초 제2 코스로 지정됐던 선원전 터 윗길은 대한제국 당시에 없던 길"이라며 "지난해 문화재청이 잘못 복원한 '고종의 길' 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충분한 역사적 고증 과정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고종이 '아관파천' 때 이용한 길이라며 덕수궁 뒤편에 '고종의 길'을 복원했다가 "실제 쓰이지 않았던 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시는 기존 2.6㎞의 길을 대한문 앞부터 정동로터리를 지나 새문안로까지 이어지는 820m짜리 길로 대폭 축소해 공개하기로 했다. 시는 이 '정동 근대역사길' 조성을 위해 2일 오전 정동로터리를 지키고 있던 삼미신 동상을 철거했다. 이곳에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광장(1900㎡)이 조성된다. 시는 5월까지 26억원을 들여 일대 보행 환경 개선 공사를 마치고 오는 6월 시민들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대한문~새문안로 구간을 '정동 근대역사길'로 우선 조성하고, 나머지 구간은 일부 코스를 수정해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