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의 요약본은 단 4페이지였다. 28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지난 22일 제출한 수사 보고서 원본이 300 페이지 이상의 분량이었단 사실을 미국 법무부가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2016년 미 대선 당시 러시아의 개입 의혹을 조사해온 뮬러 특검의 22개월 간 수사 내용이 담긴 보고서였다. 뮬러 특검의 수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족쇄였다. 뮬러 특검은 지난 22개월 간 수사 기간 관련 인물 총 34명을 기소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 측의 목을 조여왔다. 이에 민주당은 뮬러 특검을 비호하고 트럼프 대통령 탄핵론을 거론하면서 최종 보고서 발표를 고대해왔다.
그러나 최종 보고서가 나온 후 결과는 완전히 뒤집혔다. 법무부는 4페이지짜리 보고서 요약본을 공개하며 트럼프 대통령에 ‘면죄부’를 줬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완전한 무죄’라며 승리를 선언했다.
반면, 민주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보고서 원본 공개를 요구했다. 이런 가운데 특검 보고서의 총 분량이 300페이지 이상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따라 법무부가 공개한 요약본의 진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며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3월 24일
지난 22일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선거진영과 러시아 간 공모 의혹을 수사해온 로버트 뮬러 특검은 22개월 간의 수사 결과를 담은 최종 보고서를 윌리엄 바 미 법무장관에게 제출했다.
24일 바 장관은 보고서를 검토한 결과에 따른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선거진영과 러시아 간 공모 사실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 방해 혐의에 대해선 무죄 판단은 아니라고 했지만, 추가 기소는 없었다.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다.
같은 날 미 상·하원 법사위는 바 장관으로부터 서한 형식의 4페이지짜리 요약본을 전달받았다. 당시 바 장관은 뮬러 특검이 제출한 보고서 원본의 분량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한 법무부 고위 관계자는 미 언론에 보고서 분량이 ‘종합적’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완전한 면죄부’를 자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별장인 플로리다주(州) 마러라고에서 시간을 보낸 후 백악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자들을 만나 "완전하고 전면적인 무죄 입증"이라고 말했다. 트위터를 통해서도 "완전한 무죄 입증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며 승리를 선언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도 성명을 내고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엄청난 날이다. 2년 간 이어진 반(反) 트럼프 히스테리 끝에 완전한 무죄를 입증했다"고 했다.
2020년 재선 행보에도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재선 캠프는 이날 성명을 내고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합법적인 당선을 무효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미국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탄핵론까지 들먹이며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해온 민주당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였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제럴드 내들러 하원 법사위원장 등 민주당 지도부는 특검 수사 결과의 전면 공개를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4페이지 분량의 요약본으로는 사법 당국의 판단을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이유에서다.
3월 25일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측은 반격을 예고했다. 그는 25일 베냐민 이스라엘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뮬러 특검이 명예롭게 행동했는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간 특검의 수사를 ‘마녀사냥’으로 일축하고 뮬러 특검을 ‘악인’ 등으로 비난해온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발언이었다.
아울러 그는 "그들이 한 짓은 미국에 대한 반역적 처사"라며 "우리 나라에 그런 해를 끼친 사람들은 분명히 수사를 받아야 할 것"이라며 특검 추진 책임자들을 조사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 법사위원장도 민주당과 힐러리 클린턴 전 대선 후보 등을 대상으로 한 ‘제2의 특검’을 직접적으로 주장했다. 그는 25일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러시아 스캔들 수사가 시작된 근원에 대해 특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민주당은 보고서 원본 확보에 힘을 쏟았다.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하원은 이날 뮬러 특검 보고서의 모든 내용을 법무무가 의회에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공화당이 우세한 상원에서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가 표결 자체를 거부해 이 결의안은 무산됐다.
이에 펠로시 의장과 내들러 하원 법사위원장은 바 법무장관에서 오는 4월 2일까지 특검 보고서 원본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법무부가 이를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이날 로이터는 특검 보고서 원본이 백악관을 비롯한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법무부는 특검 보고서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바 장관은 "가능한 한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3월 28일
특검 보고서 원본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법무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고서 원본이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라고 전했다. NYT는 "바 장관이 미 의회에 보낸 4페이지짜리 요약본에 빠졌을 내용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고 했다.
케리 쿠펙 법무부 대변인에 따르면, 바 법무장관은 지난 27일 내들러 하원 법사위원장과의 전화통화에서 특검 보고서가 300페이지 이상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CNN도 미 법무부 관계자를 인용해 증거 자료를 제외한 뮬러 특검 보고서의 전체 분량은 300~400페이지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법무부가 특검 보고서 내용을 정리하며 추가 공개할 수 있는 부분을 검토 중이라고도 했다.
NYT도 바 장관과 뮬러 특검이 의원들에게 추가 공개할 만한 보고서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결과가 공개되기까지는 최소 몇 주가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내들러 하원 법사위원장도 전날 바 장관과의 통화 이후 "(법무부는) 우리가 요구한 보고서 제출 시한(4월 2일)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민주당의 공세는 거세졌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그들은 진실을 두려워한다"며 "바 장관, 당신의 해석은 필요 없다. 보고서를 보여주면 우리가 스스로 결론을 낼 것"이라며 특검 보고서 원본 제출을 재차 촉구했다.
민주당 소속의 척 슈머 미 상원 원내대표도 이날 의회 연설에서 "바 장곤이 트럼프 대통령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4페이지짜리 요약본을 빠르게 발표했고, 이제는 뮬러 특검이 작성한 300페이지 이상의 보고서 발표를 지연시킨다"며 "자신을 임명한 트럼프 대통령을 돕기 위한 정치적 편향성이 강하게 드러났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법무부가 앞으로 공개할 보고서 내용이 크게 수정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의 이런 요구에 상관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