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8일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시의 북쪽에 위치한 뜨러뻬앙뽀마을 쓰레기 더미에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됐다.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있었고, 그나마 하반신은 없었다. 검은색 비닐 봉지와 황색 테이프로 덮인 채 파란색 포대 자루에 들어 있던 시신은 부패한 지 상당 기간이 지나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신고자는 쓰레기 더미에서 내다 팔 고철을 뒤지던 건설 노동자. 캄보디아 경찰은 "시신의 상태로 보아 오래전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확인된 시신의 신원은 그 보름 전쯤 실종된 50대 한국인 사업가 A씨였다. 캄보디아에서 중고 휴대폰 사업을 하는 그는 지난해 11월 13일 물품 대금을 지급하려고 미화 6만달러를 가지고 나갔다가 연락이 끊겼다. 이후 15일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현지 부검 결과, 사인은 질식이었다.

시신의 다른 부분이 발견된 건 그로부터 6일 뒤. 발견자는 A씨의 가족들이었다. 상반신의 신원을 확인하러 간 A씨 가족들이 검의관에게 "하반신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검의관은 "동물이 물어 간 것 같다"고 답했다. A씨 가족들이 "상반신이 포대자루에 들어 있었는데 동물이 물어 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해도 묵묵부답이었다. 답답한 A씨의 가족들이 직접 그 쓰레기 더미로 찾아가 일대를 샅샅이 뒤진 결과 인근 소각장에서 하반신을 발견한 것이다.

A씨 가족들은 "사업을 하던 멀쩡한 사람이 사라졌다가 토막 난 시신으로 발견됐는데, 이후 4개월 동안 밝혀진 것이 없다. 모든 게 미궁에 빠졌다. 갖고 있던 휴대폰, 입고 있던 옷도 찾지 못 했고, 사건 용의자에 대한 실마리 하나 없다"고 분노했다. 가족들이 겪은 지옥의 4개월을 그들의 진술과 현지 언론 등을 통해 재구성했다.

지옥의 4개월

중고 휴대폰 사업을 하다 실종된 A씨의 상반신 시신이 발견된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시 북쪽 뜨러뻬앙뽀 마을 쓰레기장.

국내에서 부동산 사업을 하던 A씨가 캄보디아로 간 건 7년 전. 국내 경기가 좋지 않아 손실이 크자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서였다. 캄보디아 첫 사업은 현지 홈쇼핑. 2년이 지나 새로 시작한 게 중고 휴대폰 사업이었다. 5년 정도 고생하다 2016년 후반부터 사업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한국에 지사도 설립했다. A씨 가족은 "캄보디아 내에서 이 분야로는 넘버원이라는 말도 들었다"며 "현지에서 돈도 좀 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말했다.

실종된 당일도 평소와 다를 건 없었다. 해병대 출신인 A씨는 평소 즐겨 입던 해병대 글자가 적힌 빨간티에 회색 바지를 입고 한 달 전에 새로 산 도요타 랜드크루져를 타고 물품 대금을 지급하러 외출했다. 평소 거래하던 사람과 다른 사람이라고는 했지만, 건장한 체격인 데다 저녁 약속도 웬만하면 잡지 않을 만큼 조심스러운 성격이라 특별한 걱정은 없었다고 가족들은 말했다.

상황이 달라진 건 11월 13일 밤 9시. A씨 가족들은 한국 지사장으로부터 "대표님이 연락이 안 된다"는 전화를 받았다. 가족들도 계속 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A씨 가족들은 "평소 고지혈증이 있어서 혹시나 싶어 현지 직원들에게 집으로 좀 가봐 달라고 전화로 부탁했다"며 "확인 결과 집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연락이 안 돼 대사관에 실종 신고를 했다"고 전했다.

기한이 만료된 여권 때문에 가족들이 캄보디아 현지에 도착한 건 사건 발생 5일 뒤인 18일. 그 사이 캄보디아 경찰은 재(在)캄보디아 한인해병대전우회 건물 앞에서 A씨 차량을 찾아냈지만, 그 이상 추가로 확인한 사실은 없다고 했다. A씨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다 사라졌는지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A씨의 휴대폰 전원이 꺼진 장소를 영사로부터 최종적으로 확인한 건 11월 26일. 휴대폰 발신자 추적 결과는 사건 담당 형사가 아닌 다른 경찰을 통해서 받았다. 아무것도 몰라 할 수 있는 게 없던 A씨 가족에게 현지인 B씨가 다른 경찰을 추천한 것. "이곳 경찰은 돈 안 주면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인다. 서류 발급도 마찬가지다. 일을 진행하려면 돈을 줘야 한다"는 B씨의 충고에 따른 것이다.

A씨 가족은 소개받은 경찰에게 계약금으로 2000달러를 건넸고, 1000달러는 사건이 완료되면 추가로 지급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 경찰이 A씨의 휴대폰을 추적해 마지막으로 전원이 꺼진 장소를 알아낸 것이다. 하지만 그뿐. A씨 차량 발견 지점 근처의 CCTV는 고장 나 무용지물이었다는 이야기만 반복할 뿐이었다.

A씨 가족은 "휴대폰 전원이 꺼진 장소 주변에서 우리가 직접 전단을 뿌렸다. 시체라도 떠오를까 해서 강 주변도 뒤졌다. 그러다 3일 뒤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신원 확인 절차도 쉽지 않았다. A씨 아들은 시신의 머리카락과 치아를 들고 곧장 귀국해 유전자 감식을 했다. 그동안 시신은 현지 사원 냉장고에 보관됐다. 비용은 하루 50달러. 이후 가족들이 1㎞에 달하는 쓰레기장을 뒤져서 하반신을 찾은 것을 제외하면, 입고 나간 옷도 가방도 휴대폰도 발견할 수 없었다.

캄보디아 한 관계자는 "살인 후 토막 내 쓰레기장에 버리는 건 현지인들의 수법"이라고 했다. 청부 살인의 시장 가격이 1000달러에 불과한 나라라는 것이다. A씨 가족들은 "한국 경찰은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사건이라 움직이지 않고, 현지 경찰은 피해자가 자국 국민이 아니라 몸이 무겁다"고 말했다.

범죄에 떠는 기회의 땅

최근 동남아시아가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면서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한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범죄에 대해서는 인력 부족, 협약 미체결 등으로 해결이 막막하다. 동남아 국가 중 한인 관련 범죄를 전담하는 '코리안 데스크'가 있는 나라는 필리핀과 베트남뿐.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같은 나라들은 한국에서 파견 간 경찰이 영사로 근무하며 한인 범죄 수사를 도와주는 정도다.

현재 캄보디아에 있는 교민은 1만명. 교민 사건 담당 인력은 대사관 파견 경찰 영사 1명과 통역 요원 1명뿐이다. 캄보디아에서는 2016년에도 현지 휴대폰 유통 사업을 하던 한 교민이 현지인 사업 파트너와 채권 문제로 갈등을 빚은 후 살해당한 적이 있다. 다행히 이 사건은 현지 교민들의 제보로 사건 발생 직후 도주 중이던 범인이 체포됐다. 그러나 이번 사건처럼 시간이 지체되거나 주변 제보 없이는 미궁에 빠지기 쉽다. 주(駐)캄보디아 대사관 소속 파견 경찰 영사는 "중고 휴대폰 사업처럼 현지인들을 상대로 하는 사업들은 위험한 부분이 많다"며 "대사관 측에서 직접 나서기엔 수사권도 없고, 지원 인력도 부족해 막막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현재 이 사건은 지난 14~16일 문재인 대통령의 캄보디아 국빈 방문 등을 계기로 캄보디아경찰청과 프놈펜경찰청이 합동 수사 중이다.

한국 교민이 2만명이 넘는 태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1월에는 태국에서도 한국인 B씨의 토막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현지 사업 파트너인 C씨. 둘은 함께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다 금전 갈등을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인 관련 범죄가 많기로 유명한 필리핀에서는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 22일에도 현지 호텔에서 한국인 두 명이 호텔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 경찰 당국은 사망 원인에 대해 자살, 사고사, 살인 사건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 중이다. 경찰 한 관계자는 "필리핀의 경우에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한인 범죄가 발생하다 보니 필리핀 정부의 요청으로 코리안 데스크도 만들고, 지난해 한국인 피살 사건은 한국에서 수사팀도 파견할 수 있었다"며 "현지 정부가 요청하지 않는 경우에는 수사권 침해 문제와 연결되다 보니 한국 경찰이 도와줄 수 있는 방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동남아시아 국가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치안이 취약한 지역이 많고, 관광으로 갈 때와 달리 사업을 하러 갈 때 위험한 요소들도 많다"며 "해외에서 한인 사건이 발생하면 법무부와 외교부 등 거쳐야 하는 절차도 많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만큼, 좀 더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인력과 시스템 확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