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카페 같은 인테리어에 감각적인 포장을 내세운 '프리미엄 정육점' '부티크 정육점'이 등장했다. 최근엔 한층 더 진화된 형태의 정육점들이 생겨나고 있다. 한우 오마카세(셰프 특선)를 선보이는 '정육 레스토랑'부터 직접 고른 고기를 바로 구워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육점, 맛있는 고기를 다양한 요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릴 전문 그로서란트(grocerant·구매한 식료품을 즉석에서 조리해주는 곳)도 문 열었다. 정육식당 2.0 시대를 알리는 신(新) 고기 맛집!
정육점 품은 한우 오마카세 맛집
채식 열풍에 역행하는 듯하지만 조리법이 단순한 채소와 달리 고기는 종류별, 부위별, 굽는 형태, 굽는 시간, 불의 세기, 심지어 가미하는 소금에 따라 맛이 다르다. 맛있는 고기를 숙련된 전문가가 요리해주면 제맛을 알 수 있다. 한우 오마카세 전문 식당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가격대는 대개 1인 10만원대부터 몇 십만원대까지 천차만별. 자연스레 가성비 맛집에 눈이 갈 수밖에 없다.
서울 용산구 원효로 부티크 정육점 미트랩의 2층 미티크는 1인 8만9000원에 한우 오마카세를 맛볼 수 있는 곳. 정육점과 함께 운영하고 있어 신선한 고기를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대에 골고루 맛볼 수 있다. 한우 중에서도 새끼를 낳지 않은 미경산 암소와 여물을 먹여 키워 풍미가 좋다고 알려진 화식(火食) 한우를 기본으로 한다. 식전주, 아뮤즈 부슈(한입 거리 식전 음식)부터 시작해 디저트까지 총 13가지 코스. 메뉴는 매일 달라지지만 메인은 구이 위주다. 부채살, 치마살, 갈비살, 업진살, 안심 등 셰프가 그날 엄선한 부위별 고기를 맛볼 수 있다. 1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바 안쪽엔 고기를 구울 수 있는 시설을 갖춰 셰프가 즉석에서 고기를 구워 접시에 담아 낸다. 숯불구이 외에 '짚향 등심구이' 등 이색 구이를 제공하는 날도 있다. 구이류를 낼 땐 셰프가 고기와 잘 어울리는 소스를 추가해주거나 여러 가지 맛의 소금을 덜어준 뒤 맛의 조합에 대해 손님들과 이야기 나눈다. 이승재(37) 셰프는 "소금과 고기 맛의 조합을 찾아가는 코스는 와인 페어링만큼이나 손님들이 흥미로워한다"고 했다. 한우 오마카세는 1일 1회 10명 선착순 예약제로만 진행한다. 한우에 곁들이기 좋은 샴페인과 와인은 일반 레스토랑보다 30% 정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미트랩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미티크는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 영업. 일요일 휴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숙성한우 전문 정육점 설로인도 '원 테이블(테이블이 한 개 있는)' 한우 오마카세 맛집으로 유명하다. 깔끔하게 제품을 진열해놓은 정육점 옆 아담한 식사 공간에서 점심과 저녁 하루 각 1팀, 2인 이상 최대 10인 손님을 위한 한우 오마카세 테이블이 마련된다. 한우 오마카세는 '설로인'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시작했다. 설로인이란 이곳에서 판매하는 한우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오마카세 메뉴는 당일 고기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1인이 한우 330g, 6~7부위를 맛볼 수 있다. 여기에 육포, 곶감 쌈, 우뭇가사리 콩국, 대구살과 새우살로 만든 어만두 등 요리가 곁들여진다. 고기는 다양한 방법으로 구워 낸다. 한우 오마카세 가격은 기본 한 테이블에 점심 4인 기준, 저녁 3인 기준 50만원이다. 인원 추가는 점심 1인 12만원, 저녁 1인 16만원이다. 평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주말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영업.
고기 구워주는 정육점
광진구 구의동에 있는 수입육 정육점 더미트엔 셀프바가 있다. 기존 정육식당처럼 정육점에서 고기를 구입한 뒤 계산 시 4900원을 추가하면 정육점과 가벽 하나를 두고 나란히 있는 샐러드바와 그릴서비스를 맘껏 이용할 수 있다. 육류 유통 특성상 수급에 따라 가격 변동이 좀 있지만 스테이크용으로 많이 먹는 미국산 부채살 150g 한 덩어리에 5500원, 스테이크용 호주산 와규는 9800원 선이다. 혼자 1만원대면 샐러드바까지 이용 가능하다. 한우 채끝 스테이크도 1만원대, 미국산 립아이도 3만원대에 맛볼 수 있다. 모두 냉장육이다. 롯데마트 바이어 출신의 이곳 남종근(50) 대표는 "특히 호주산 소고기는 해발 1000m 청정 지역인 '레인저스밸리 농장'에서 키운 제품을, 한우는 매장 내 자체 숙성고에서 숙성시킨 후 판매한다"고 했다. 정육점에서 구입한 소고기를 가져다주면 올리브유, 로즈메리 오일을 발라 채소와 함께 먹기 좋게 구워준다. 잘 구운 스테이크는 육즙이 풍부하다. 스테이크에 와인까지 곁들이면 유명 스테이크 전문점 못지않은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소문이 나면서 '혼스(혼자 스테이크 먹는 것)' 하러 오는 이들도 있다.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영업.
송파구 마천동 정육점 앵거스박고기공장 본점의 2층 라운지에서도 등심·부채살·토시살(9900원), 갈비살(1만1000원), 꽃갈비살(1만5000원) 등을 골라 주문하면 커다란 접시에 알맞게 구운 스테이크, 연잎밥, 샐러드를 담아 내준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영업. 일요일 휴무.
그 자리에서 먹을 순 없지만 부티크 정육점 1세대에 해당하는 서초구 서초동 에이징룸은 정오부터 오후 7시까지 '즉석 그릴 서비스'를 해준다. 고기를 구입하고 팩당 3000원을 추가 지불하면 매장 내 그릴에 아스파라거스, 양파, 버섯 등 채소와 소스를 넣어 원하는 정도로 스테이크를 구워 포장해준다. 1+ 이상 등급의 한우와 신선한 제주산 돼지고기를 선별해 판매한다. 진공 포장으로 고기의 수분을 유지하면서 숙성시킨 '웨트에이징(wet aging)' 외에도 건식 숙성시킨 '드라이에이징' 고기도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스테이크 전문점에서도 고가에 속하는 티본(안심과 등심 사이 T자 모양의 뼈부분 부위)도 450g 기준 6만원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영업. 일요일 휴무.
매장 내 셀프 그릴 갖춘 그로서란트 등장
매장 안에서 직접 구워 먹는 셀프 그릴 존을 갖춘 그로서란트도 등장했다. 은평구 수색동 그릴포유 매장 중앙엔 식료품 냉장고와 진열대, 셀프 그릴 존이 마련돼 있다. 1인 1메뉴 주문 시 셀프 그릴 존을 무료 이용할 수 있다. 신선한 냉기를 뿜는 냉장고에서 먹고 싶은 고기, 소시지, 해산물을 골라 계산 후 바로 옆 셀프 그릴 존에서 알아서 구워 먹으면 된다. 이용객이 적을 땐 셰프가 상주해 구워주기도 한다. 귀찮으면 메뉴에 있는 스테이크(한우 안심·꽃등심·채끝 150g 기준, 모두 2만9000원)를 주문하면 된다. 저녁 시간대엔 숙성 한우, 프라임급 살치살, 소시지, 새우, 이베리코, 오징어, 모둠채소를 바로 구워 내는 모둠 플레이트(7만원)가 인기다. 5명의 셰프가 쾌적하고 널찍한 오픈 주방에서 파스타, 피자, 태국 음식 등을 만들어내 다채로운 요리와 구이류를 함께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