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아름다운 수학이라면|최영기 지음|21세기북스|234쪽|1만5000원
어느 철학자가 물었다. 수학을 가장 못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정답은 '수학에 관심 없는 사람'이었다. 지난 2015년 한 교육단체 조사에서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59.7%, 중학생의 46.2%가 '수학을 포기했다'고 응답했다. 학생들이 끊임없이 수학과 이별을 선언하며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를 자처하는 이유는 '외울 게 많아서' '문제 풀이가 지겨워서'라고 한다. 입시를 위한 주입식 교육을 거친 대부분의 사람에게 수학은 딱딱하고 재미없는 '숫자 놀음'일 뿐이다.
그러나 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인 저자는 "수학에는 '감동'이 있다"고 주장한다. '복잡한 방정식을 풀었을 때 느끼는 희열' 같은 학문적 감동이 아니다. 차를 타고 다리 위를 달리다가 문득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저녁 노을을 보면서 느끼는, 누구나 공감하는 아름다움이 수학에도 있다는 얘기다.
원래 수에는 음수라는 개념 없이 양수만 있었다. 17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수를 수직선상의 점과 대응시키면서 음수 개념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수직선과 음수는 수학에 균형과 조화의 아름다움을 가져왔다. '얻는 것(양수)이 있으면 잃는 것(음수)이 있다'는 인생의 진리가 수학의 세계에도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수직선의 발견은 '관념' 속에만 있던 숫자와 수직선이라는 '공간'의 만남을 의미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더욱 가치 있고 풍성하게 한다.' 저자가 수직선의 탄생 속에서 발견한 '감동'은 인간관계의 아름다움이었다.
수학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꿔 왔을까. 1863년 1월 1일 링컨 미국 대통령은 노예 해방을 선언했다. 링컨은 노예 제도의 모순을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노예를 소유할 권리가 피부색, 지성 또는 돈에 의해 정당화된다면, 같은 추론을 적용해 그 노예도 피부색이 다른 주인을 노예로 만들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주장이었다. 선언문은 'A(노예)가 B(주인)보다 작거나 같으면서(A�B) 동시에 A가 B보다 크거나 같으면(A�B) 결국 A와 B는 같다(A=B)'라는 수학적 사고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초등학교를 다니다 그만둔 링컨은 '학력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의 '원론'을 끼고 다녔다. 수학책에 소개된 논리적 증명 방법을 공부하면 자신의 논리력도 향상될 것이라고 믿었다. '엄밀한 논리를 삶에 적용해 모순을 바로잡는 것'을 수학의 정신으로 여긴 사람들이 역사를 바꿔 온 것이다.
'점(點)은 부분이 없다.' 기원전 300년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가 집필한 '원론'은 이렇게 시작한다. 점과 마찬가지로 '현재'라는 순간 역시 부분이 없다. 그렇지만 점이 모여 선(線)을 이루듯 순간이 모여 시간을 이룬다. 시간이 모여 선과 같은 과거를 이루고, 그 모든 과거들이 우리의 삶을 이룬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이 불변의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 바로 수학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수학의 기원에서 우리 삶의 가치를 발견한다.
수학이 주는 감동을 역설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나면 한 권의 철학 서적을 읽은 것 같다. 수학의 아름다움과 수학자들의 위대함을 빌려 우리 인생에 건네는 따뜻한 조언들로 채워져 있다. 수학을 좋아하는 저자는 그러나 숫자에 대한 맹신으로 삶을 허비하진 말라고 조언한다. 고대 사람들이 수를 세기 위해 사용했던 돌을 라틴어로 '칼쿨루스'라고 한다. 이 단어가 오늘날 '계산(calculation)'을 뜻하는 용어의 어원이 됐다. 수는 인간 생활의 실용적 필요를 위해 태어났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수를 통해 통제하고 통제받는다. 연봉이나 재산 등 숫자로 모든 것을 평가받으면서 수는 곧 권력이 됐다. 시종일관 "수학은 아름답다!"고 외치던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삶이 죽음 뒤에 남는 것이라곤 숫자뿐인, 그런 허망한 삶이 아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