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전 미국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역임했던 세계적인 경제 석학 앨런 크루거<사진>가 향년 58세로 사망했다. 18일(현지 시각) 가족들이 작성, 프린스턴대가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사인은 자살이었다. 현지 언론은 그가 16일 아침 자택에서 경찰에 발견됐으며 이후 사망 선고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크루거는 데이비드 카드 UC버클리대 교수와 함께 펴낸 저서 ‘근거없는 믿음과 측정: 최저임금의 경제학(1995)’으로 최저임금 논쟁을 촉발한 경제학자다. 여기에 실린 논문 ‘최저임금과 고용, 뉴저지와 펜실베이니아 패스트푸드산업 사례연구’는 1993년 최저임금 인상에도 일자리가 줄지 않았던 실제 사례들을 분석해 당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던 ‘최저 임금이 오르면 실업률이 늘어난다’는 주장을 반박, 각국의 경제학자와 고용정책 담당자 사이에 파문을 일으켰다. 이 논문은 오늘날까지 한국을 포함해 각국에서 최저임금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최저임금 인상 옹호론의 실증 근거로 제출되고 있다.

백악관에 있는 동안에는 부의 분배와 부의 계층간 이동에 관한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이른바 ‘위대한 개츠비 곡선’을 소개해 대중화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부자가 된 청년 개츠비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에서 이름을 딴 이 곡선은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 나라일수록 세대간 계층 이동성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크루거는 오바마 전 행정부 출범 초기 재무부에서 차관보를 지냈으며 2011~2013년 CEA 위원장으로 일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는 노동부에서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최근까지는 스탠포드대에서 강연을 이어왔다.

1960년에 태어나 고용·실업 문제에 정통한 노동경제학자로 1987년부터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쳐온 크루거는 이론보다는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교육과 의료, 노동시장, 테러리즘, 콘서트 티켓의 가격상승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접근법을 광범위하게 적용했다. 오는 6월 출간 예정인 새 책도 음악 산업에 대한 경제학 서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크루거의 뒤를 이어 CEA 위원장을 맡았던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크루거는 실질적으로 의미가 있는 연구를 하기 위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헌신했다"며 "락앤롤도 단순히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연구했다"고 했다.

재임 시절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대표 경제정책 중 하나로 내걸었던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지난 주말 미국은 우수한 경제학자 한 명을 잃었다. 그리고 우리 중 다수는 소중한 친구를 잃었다"며 "크루거는 한 페이지에 있는 화면이나 차트에 있는 숫자보다 더 깊은 사람이었고, 경제정책을 추상적인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방법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고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