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그룹 '빅뱅'의 멤버인 이승현(29·예명 승리)씨로부터 시작된 논란은 대형 스캔들로 커졌다. 기름을 부은 건 카카오톡 메시지였다. 이씨와 가수 정준영(30)씨 등이 2015~2016년 단체 채팅방에서 성관계를 몰래 촬영한 동영상을 공유하고, 뒤를 봐주는 고위 경찰이 있다는 얘기를 한 것 등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이번 수사의 핵심 증거다. 그런데 검찰은 이 물증을 쥐고만 있고, 경찰은 120명 넘는 수사관을 투입하고도 열흘 넘게 증거를 찾아 헤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검찰은 증거 원본을 갖고 있다. 카카오톡 대화록, 동영상, 사진이다. 방정현 변호사는 제보받은 메시지 원본 등을 국민권익위원회에 넘겼고, 권익위는 지난 11일 수사 의뢰 형식으로 자료를 검찰에 전달했다. 그런데 검찰은 15일까지 수사하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어느 부서에서 수사할지도 안 정했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이 한창 수사 중인 사건이라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만 했다. 직접 수사를 할지, 경찰 수사를 뒤에서 지휘할지도 결론 못 내렸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경찰 유착 의혹이 있는 이 사건을 지금 수사하겠다고 나설 경우 '경찰 손보기'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검찰이 카카오톡 메시지 원본 등을 경찰에 넘겨 수사하게 할 수도 있다. 검찰은 "그건 어렵다"고 하고 있다. 권익위가 경찰을 못 믿어 증거를 검찰에 줬는데 이를 다시 경찰에 넘길 순 없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이 만약 (원본) 자료 협조 요청을 해온다면 검토는 해보겠다"고 했다. 수사는 하지 않고 증거만 틀어쥐고 있는 셈이다.

그러는 사이 경찰은 증거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사에 투입된 수사관만 120명이 넘는다. 지난 13일엔 수사관 10여 명을 투입해 서울 서초구의 한 사설 복구 업체를 압수 수색했다. 이곳은 정준영씨가 2016년 휴대전화 수리를 맡겼던 곳이다. 이 업체가 당시 정씨 휴대폰에서 복원한 뒤 보관하고 있던 카카오톡 메시지가 검찰이 지금 갖고 있는 메시지 원본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은 지금 이 메시지 복사본만 갖고 있다.

경찰은 15일에도 이 업체 압수 수색을 계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자료 확보에 시간이 걸려 압수 수색을 마치려면 앞으로도 3~4일 이상이 걸릴 수 있다"며 "자료가 어떻게 유출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주목적은 원본 메시지 확보라는 평가가 많다. 경찰이 검찰과 똑같은 증거를 얻으려고 가장 중요한 시기인 수사 초기를 허송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찰은 또 지난 14일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승현·정준영씨와 유리홀딩스 대표 유모(34)씨 등을 소환해 밤샘 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정씨에게서 3대의 휴대폰을, 이씨와 유씨로부터 각각 1대의 휴대폰을 제출받았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다른 '범죄 자료'가 있는지와 함께 문제가 된 카카오톡 메시지 원본이 남아 있는지도 확인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이 중엔 정씨가 여성들과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기 위해 마련한 '황금폰'도 있었다. 그러나 휴대폰 6대 안에 이들 혐의와 관련한 별다른 자료가 없을 가능성도 있다. 한 변호사는 "검찰 자료를 왜 달라고 요청도 안 하는지 모르겠다"며 "경찰이 검찰이 가진 증거를 찾아 헤매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검찰에 증거 원본을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며 "수사는 일단 복사본으로 해도 별 지장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