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국무부 차관보 정도가 ‘No’ 한다고 금강산⋅개성공단 재개 안 되진 않아"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12일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로 마무리된 것에 대해 "협상의 흐름에 있어 판을 깬 것은 미국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귀책 사유가 더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하노이 회담 합의 무산의 귀책 사유가 어느 쪽에 있다고 보나’는 질문을 받고 "북한은 예측 가능한 행태를 보였고 미국은 예측가능하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면서 이같이 답했다.
그는 이어 "(하노이 회담 전)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북한에 가서 ‘점진적·병행적 접근을 통한 타결’이라는 메시지를 줬으나 갑자기 ‘빅딜’로 나왔다"고 했다.
문 특보는 그러나 이 발언 이후 "쌍방의 책임이 있는 만큼 ‘귀책 사유’란 표현은 철회한다"고 발언을 번복했다.
문 특보는 북한에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재건 움직임이 포착된 데 대해선 "북한이 그것(미사일 발사장 재건)을 협상 레버리지(지렛대)로 사용한다면 상당한 악수(惡手)가 될 것"이라면서 "사소한 악수가 상황을 재앙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창리로 인한) 나비효과는 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 특보는 "미국도 대화를 하겠다고 하는 만큼 판이 깨지는 상황은 아니다"면서 "북한과 미국 모두 서로 조심하면서 물밑접촉을 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 "북측은 (하노이 회담 과정에서) 어느 때보다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제시했다"면서 "북·미 재협상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플러스 알파로 나온다면 사태 반전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문 특보는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유 중 하나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과욕과 김정은의 과신을 꼽았다.
문 특보는 "트럼프 대통령은 핵무기 전면 폐기 뿐 아니라 화생무기·탄도미사일 전체를 검증 가능하게 폐기하는 빅딜을 제시했다"면서 확대회담 당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들고 온 ‘노란봉투’를 언급했다. 문 특보는 "(미국은) 그 반대급부로 북한 경제의 미래 청사진을 제공했다"면서 "다만 구체적인 정치·군사·경제적 보장책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했다.
김정은에 대해선 "영변 핵시설의 검증가능한 완전 폐기라는 ‘스몰딜’로 제재완화라는 미국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과신했다"면서 "미국은 북측이 제시한 유엔 대북 제재 중 민수·민생 부분 제재 해제를 ‘과도한 요구’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유엔제재 결의안의 해제보다는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를 갖고 왔다면 어땠을까. 그게 아쉽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대북 제재로 개성공단·금강산 재개가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해보고 지켜보자"면서 "미 국무부 차관보 정도가 ‘노’(No)라고 해서 안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문 특보는 하노이 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는 당분간 현상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면서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한⋅미가 연례훈련 축소 결정을 내린 이상 북한이 핵 실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 가능성은 적다"며 "그러나 미국이 ‘제재와 최대압박’을 유지하며 일괄타결을 계속 주장한다면 트럼프 임기 내 협상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며 "보다 적극적인 외교노력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