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삼동 맛집으로 소문난 PC방 ‘피씨앤쿡’. 카페식으로 꾸민 공간에서 직접 조리된 70여 가지의 요리를 먹을 수 있다.

육즙이 가득한 패티(다진 고기) 위에 올려진 반숙 계란 프라이, 브로콜리와 미니 당근, 양파가 한 접시에 놓여 있다. 사이드 메뉴로는 볶음밥과 소시지볶음, 참치와 콘을 마요네즈로 버무린 샐러드가 나온다. 주문한 지 10분 정도 뒤에 나온 이 메뉴는 1만3000원짜리 함박스테이크. 분식점이나 양식점이 아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PC방 '피씨앤쿡(PC&COOK)'이다.

이곳 메뉴는 70여 가지 이상. 국물떡볶이 등도 인기 메뉴다. 음료 메뉴까지 합하면 150여개. 아보카도바나나 생과일주스 등 어지간한 카페보다 다양하다.

이 음식들은 냉동식품을 데운 것이 아닌 19.8㎡(약 6평)의 주방에서 직접 조리한 것. 음식 배달 서비스에도 등록돼 2~3분 간격으로 "배달의 민족 주문이 들어왔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들렸다. 게임 마니아로 PC방 인스턴트 음식이 싫어 2015년 직접 매장을 열었다는 현지영 피씨앤쿡 대표는 "동네 주부들도 저녁 반찬거리로 자주 찾아 포장해간다"며 "전체 매출 중 음식 비중이 60% 이상"이라고 말했다.

인근에 있는 '시그니처 아레나 PC방'. 이곳은 패밀리레스토랑 수준의 투움바 파스타(크림파스타 일종)를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꾸덕한 소스에 잘 익은 파스타면, 사이드 메뉴인 숯불 소시지는 에어프라이어 기계에 튀겨준다. 가격은 6500원. 아르바이트생은 "요금 결제나 음식 주문은 모니터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주요 업무는 음식을 만들고 조리 기구를 씻는 일"이라고 말했다. 여대생 김모(22)씨는 "남자 친구와 게임을 하면서 파스타를 먹을 수 있어서 자주 찾는다"며 "이 모든 걸 1만원 안팎 가격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바일 게임의 인기 등으로 쇠락 길에 접어들었던 PC방이 최근 '맛집'으로 변신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어두운 조명 아래 담배 냄새를 맡으며 컵라면이나 끓여 먹던 건 과거 이야기. 세련된 인테리어 아래에서 '요리' 수준의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PC토랑' 시대다.

최근엔 전국 PC방별 대표 메뉴를 찾아다니는 '피슐랭 가이드'도 인기다. 장안동 '차슈 돈부리(일본식 돼지고기 덮밥)', 신림동 '상하이 치즈치킨버거'에 수제 버거, 초밥까지 메뉴가 다양하다.

유튜브의 'PC방 먹방'도 화제다. 먹방 유명 크리에이터 밴쯔의 '저도 밥 먹으러 PC방 좀 다녀왔습니다'의 조회 수는 345만회 이상. 또 다른 유명 크리에이터인 엠브로는 PC방이 24시간 영업한다는 것에 착안해 '아침밥으로 PC방 전 메뉴 털기 먹방'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6년까지 1조4668억원으로 하락했던 전국 PC방 매출은 2017년 1조7600억원으로 반등했다. 2018년 매출액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2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하락세를 보이던 PC방 시장 규모가 '게임 배틀그라운드', '로스트아크' 등의 흥행에 먹을거리 판매, 플랫폼 광고 사업 등이 추가되면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 PC방 사업이 시작된 건 1998년. 당시 IMF 외환 위기로 퇴직한 아버지들의 생계 수단, 청소년들의 안식처로 사랑받으며 꾸준히 성장했다. 10년 뒤인 2009년엔 전국 PC방 수가 2만1547개, 전국 PC방 일 평균 이용 시간은 751만661시간에 달했다. 그러나 2013년 PC방의 전면 금연 조치가 시행되면서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기기들의 사양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부담도 커지면서 문 닫는 곳도 속출해 2015년 전국 PC방 수는 1만1282곳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2016년 게임 '오버워치'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PC방들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고, 이후 PC방의 대형화, 프랜차이즈화가 진행됐다. 소위 'PC토랑'도 그런 생존 전략의 하나다. 스타덤 PC 관계자는 "더는 컴퓨터 사양(CPU·메모리·그래픽카드 등)으로는 차별화가 어렵기 때문에 먹을거리 판매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며 "압구정봉구비어, 순남시래기 등과 메뉴 개발을 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