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 글지기 대표

이른 봄 북향(北向) 교실이 어련했으랴. 대개들 처음 보는 사이인지라 경계심도 얼마간 품었을 터. 을씨년스러운 고교 첫 학기, 오래가지 않았다. 동전 따먹기가 판친 것이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쪽지를 돌렸다. 짤짤이(일명 쌈치기) 한 놈 다 적어 내. 피멍 든 허벅다리로 며칠을 어기적댔다. 학생이든 어른이든 확률(確率) 놀이 함부로 했다간 된통 혼나는구나. 정작 ‘확률’이란 말도 잘 써야 함은 이제야 깨달았으니….

'하루 5시간 이상 TV를 본 사람은 2시간 미만 TV를 본 사람보다 10년 만에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는 확률이 65%포인트나 높게 나왔다.' 미국에서 50세 이상 13만여 명을 추적 조사했단다. TV를 많이 볼수록 제대로 못 걷게 된 사람이 많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건 '비율(比率)' 아닌가. '확률'은 어떤 것이 생길 가능성의 정도이지, 이미 벌어진 바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걷지 못하게 된 비율'이 올바른 표현이다.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을 이긴 팀이 우승한 건 71.4%. 두산이 이 높은 확률을 위해 베팅한 선수는….' 어떤 일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횟수나 양(비율)과 그런 일이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확률)은 엄연히 다르다. 여러 매체가 툭하면 잘못 쓴다. '높은 승률(비율)을 감안해' 식이라야 알맞겠다.

비율과 뒤죽박죽 쓰는 말이 또 있다.

'우리나라는 2017년에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비중이 14%를 넘어서 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비중(比重)'은 물리학이 아닌 일상에서는 한마디로 '중요도'를 말한다. 여기서는 65세 이상 인구를 가리키므로 비율이 맞는다. 물론 수치로 나타내기 어려운 사회적 영향력 따위를 이르고자 한다면 비중을 써야겠지만.

‘비율’이라 해야 할 걸 확률로, 어떤 때는 비중으로 써도 된다면 이런 식이 성립할 법도 하다. 확률=비율=비중, 확률=비중. 말이 되는 소리냐고? 그러니 ‘확률’과 ‘비중’이여, 억지 부리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