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 이준석 최고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1일 3⋅1절 기념사에서 "‘빨갱이’란 표현은 청산해야 할 대표적 친일잔재"라고 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빨갱이’는 일제가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었고 지금도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반(反)체제 인사를 ‘빨갱이’라 낙인찍는 일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빨갱이란 단어를 친일잔재로 등치시킨 것은 6⋅25 남침(南侵)을 한 북한 김일성이나 북한 핵무장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까지 ‘친일 프레임’을 씌우려는 것 아니냐는 반박이 야당에서 제기된 것이다.

바른미래당 이준석 최고위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왜 문 대통령이 ‘빨갱이 표현을 쓰면 친일’이라는 프레임을 만들려는지, 빨갱이가 진짜 일제가 만든 개념인지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며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김일성 일당의 전쟁도발이 그 세대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한(恨)이 주원인"이라고 했다. 그는 "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보니 광복 이후에 빨갱이로 몰려서 고통받으신 분들의 마음에는 잘 공감하고 계신 듯하다"면서도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전쟁에서 사망한 14만 9000명의 국군 전사자, 71만명의 국군 부상자, 13만명의 국군 실종자와 37만명의 민간인 사망자, 22만 9000명의 민간인 부상자, 30만명이 넘는 민간인 실종자들과 그 가족들이 가진 한에 대해서는 무덤덤하신 것 같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장능인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갑자기 ‘빨갱이’라는 단어 또는 관련 개념을 직·간접적으로 12회 언급했는데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도 ‘색깔’을 언급하며 국민을 편 가르기 하고 싶은가"라고 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언급한 단어에는 북한의 6⋅25 기습 남침을 통해 수백만 국민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앗아간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담고 있다"며 "3⋅1절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한 역사 왜곡 여지가 있는 표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기 위한 ‘신(新)적폐몰이’와 국민 편 가르는 정치를 당장 그만두라"고 했다.

바른미래당 이종철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기념사에 나온 ‘빨갱이’ 어원 풀이는 오히려 거꾸로 ‘색깔론’을 부추기는 형국"이라며 "좌우 이념 갈등의 최대 상처는 ‘김일성이 일으킨 6⋅25 전쟁’이라는 사실을 빼고서 좌우 갈등의 반쪽만을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빨갱이’란 단어가 ‘용공 프레임’으로 악용된 적이 있지만, 이 단어는 김일성의 남침으로 인한 6⋅25 전쟁의 상처가 만들어낸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빨갱이 단어=친일잔재’로 규정하는 것은 자칫 김일성 3대 정권의 모순을 비판하는 것까지 ‘친일 프레임’에 가두려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야당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빨갱이’ 발언은 최근 북한 비핵화 가능성에 회의적인 야당을 겨냥해 ‘적대와 분쟁의 시대를 바라는 세력’이라고 지칭한 것과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현 정권의 남북 대화 기조에 비판적인 정치 세력을 ‘친일 잔재’로 규정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실제 인터넷이나 일부 보수집회에선 문 대통령의 대북 정책 기조를 비판하면서 ‘빨갱이’란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이들이 문 대통령을 공격하면서 쓰는 표현에 과한 측면이 있다 해도 집권자가 공개적으로 이를 친일잔재로 규정하는 건 건전한 비판조차 봉쇄하려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했다.

‘빨갱이’란 단어의 어원을 두고는 일본 강점기 때 항일무장유격대를 지칭한 ‘파르티잔(빨치산)’에서 나왔다는 설과, 구(舊) 소련의 국기 색깔이 빨간 데서 유래했다는 설 등 다양하다. 그 뒤 중국의 국기도 홍기(紅旗)고 공산 위성국가 대부분의 국기도 빨간색이 주조를 이뤘다. 그 때문에 해방 이후엔 주로 공산주의자를 지칭하는 단어로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