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디브에서 남쪽으로 500㎞ 떨어진 인도양 정중앙의 차고스 제도는 '움직이지 않는 항공모함'이라고 불린다.

60여개 섬을 합쳐도 서울의 11분의 1 정도 면적에 불과하지만, 제도에서 가장 큰 디에고가르시아섬에는 인도양 유일의 미군 기지가 있다.

미 공군은 이곳을 기점으로 중동과 아프리카, 동남아까지 작전 반경에 포함시킬 수 있어 천혜의 군사 요충지를 확보한 셈이다. 1991년 걸프전,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도 미군 폭격기가 이곳에서 출격했다. 미 해군 5함대도 이 섬에 주둔하고 있다.

인도양 차고스제도의 디에고가르시아섬 전경. 이 섬에는 인도양 유일의 미군 기지가 있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25일(현지 시각) "차고스 제도의 영유권을 모리셔스에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려 이 '항공모함'의 향배에 국제사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원래 차고스 제도는 영국 식민지로 있던 아프리카 서부 섬나라 모리셔스에 속한 영토였다. 영국은 1965년 모리셔스에서 차고스 제도를 떼어내 '영국령 인도양 지역(BIOT)'으로 분리한 다음 이듬해 미국에 임대했다. 미군은 이후 디에고가르시아섬에 기지를 건설하고, 영국에는 그 보답으로 잠수함에서 쏘는 핵미사일을 싼값에 제공했다.

두 강대국 간 거래 때문에 200여년간 이곳에서 살던 원주민 1500여 명은 터전을 잃고 2000㎞가량 떨어진 모리셔스 등으로 강제로 쫓겨났다. 모리셔스는 1968년 독립했지만 여태 차고스 제도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이번 ICJ의 판결은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국제사회 최고 재판소의 결정이란 점에서 영국에는 압박이 될 전망이다. ICJ가 이번 판결을 내놓은 이유는 유엔이 2017년 차고스 제도에 대해 ICJ가 의견을 내야 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독일과 프랑스도 기권표를 행사하며 사실상 모리셔스 편을 들었다. 특히 프랑스는 차고스 제도를 18세기에 먼저 차지했다가 1814년 나폴레옹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영국에 빼앗긴 아픔이 있다.

ICJ 판결에 대해 영국 외교부는 "(구속력이 없는) 권고 의견이지만 신중하게 살펴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차고스 제도의 미군 기지가 서방 세계의 안보 전략상 중요하기 때문에 영국과 미국이 가까운 미래에 영유권을 모리셔스에 되돌려줄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