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외교 뉴스를 주로 다루는 중국 환구시보가 최근 이례적으로 래퍼 GAI(周延)와 아이러(艾熱)가 함께 만든 랩을 소개했다. 지난달 8일 발표한 이 노래의 제목은 '영원히 혼자 걷지 않으리(永不獨行)'. 가사에는 '함께 힘을 합치면 결국 승리를 거두리' '공통 목표를 향하고 진전하는 과정을 더욱 귀히 여기자' 같은 내용이 담겼다. 노래를 부른 두 가수는 중국 최고의 힙합 스타다. 중국 인터넷에서는 "미국에선 에미넘이 랩으로 대통령 욕도 하는데, 중국 최고 래퍼들은 쌍으로 나와서 체제 찬양 동요를 부르느냐"며 비판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사회주의 래퍼'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지난해 1월 '방송 출연 금지 4대 지침'을 내리고 힙합 가수의 방송 출연을 제한하자 나타난 현상이다. 이들은 체제를 칭송하는 랩을 하는 대신 방송에 비교적 자유롭게 출연한다. 중국 힙합 팬들은 "풍자와 저항의 음악인 힙합이 중국에서는 칭송과 아부의 음악으로 바뀌었다"고 비판한다. '먹고살려는 사회주의 래퍼들의 의지가 대단하다'며 '구생욕(求生欲·생존을 갈구하는 욕구)'이란 조롱 섞인 신조어도 만들었다.
사회주의 래퍼의 대표 주자는 단연 GAI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545만 팬을 거느리고 있는 그는 2017년만 해도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 참선하거나 수행하면서 이번 생 허비할래"와 같은 허무주의 랩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불건전 가수로 낙인찍혀 퇴출된 뒤로는 체제 선전 노선으로 급선회했다. 지난해 5월 발표한 '만리장성'에서는 '불굴의 정신은 중화 혈통의 특징'이라고 노래했다.
중국의 다른 힙합 가수들도 중국 찬양 랩을 발표하는 추세다. 지난해 3월 신장(新疆)위구르족 래퍼 아이러는 '신장으로 가자'란 노래에서 '신장, 그곳은 민족 구분 없이 사랑이 가득한 곳'이라고 칭송했다. 국내 인기 아이돌 그룹 '갓세븐'의 홍콩 출신 멤버 왕잭슨(王嘉尔)은 지난달 발표한 '중국홍'(RED)이란 랩에서 '지금껏 나는 늘 100% 중국 정신을 유지했지' '중국인은 중국 피를 늘 유지해'라고 했다.
중국이 힙합을 규제하는 이유는 도발적인 메시지가 특징인 힙합이 유행을 타면 사회 통제가 어려워질 것을 우려해서다. 중국에서는 2017년 힙합 경연 프로그램 '중국에도 힙합이 있다'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힙합이 유행할 조짐을 보였다. 그러자 미디어 감독기구는 프로그램 종영 3개월여 만에 '힙합, 문신, 허무주의를 배척한다'며 힙합 가수의 방송 출연을 제한했다.
중국 사회주의 힙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해프닝도 있었다. 2017년 12월 CCTV에서 방영된 경연에서는 한 래퍼가 심사위원들의 요청으로 즉석에서 '조국 만세'를 랩처럼 외쳤다. 심사위원은 "어떻게 중국몽을 실현할 것인지를 랩 가사로 써서 공연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중국의 포털 사이트 바이두의 게시판에서는 '봉건 왕조 시대에 왕에게 만세 하는 백성들 같았다' '힙합은 중국에서 본질을 잃었다'는 글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