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한 문제 놓고 오래 고민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오래 고민할수록 실마리가 보인다는 점이에요."
지난달 17일 강원도 철원군 병영체험수련원. 초·중등생 50명가량이 수학 문제를 놓고 집중하고 있었다. 고민하는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책상에 정자세로 앉은 학생이 있는가 하면 대다수는 소파처럼 편안한 의자에 누워서 고민하거나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이들은 한 문제를 놓고 적게는 10분에서 많게는 몇 시간까지 '몰입'했다.
이들을 '몰입'의 세계로 안내한 이는 황농문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베스트셀러 '몰입'의 저자이자 국내 최고 몰입전문가로 유명한 그가 강원도 철원군(군수 이현종) 철원교육지원청 지원으로 강원도에 몰입을 주제로 캠프를 열었다. 김재홍 철원군병영체험수련원장은 "상대적으로 교육여건이 낙후된 지역 학생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차원에서 기획, 교수님께 요청했다"며 "인근지역 학교에서 선발된 학생들과 캠프 소식을 듣고 다른 지역에서 찾아온 학생 약 100명을 대상으로 2주간 진행했다. 학생들의 반응을 살펴 앞으로 캠프 규모를 늘릴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몰입캠프는 여타 학습캠프와는 확연히 달랐다. 교육과정은 문제를 많이 맞히거나 진도를 빨리 나가는 것이 중심이 아니었다. 아직 못 푼 문제를 고민 끝에 풀어내는 경험을 학생 스스로 하게 만드는 데에 집중했다. 이를 위해 몰입전문 강사와 대학생 멘토들이 학생이 안 풀리는 문제를 고민해서 풀 수 있도록 곁에서 지속적으로 유도했다.
오직 수학 문제를 푸는 것도 특이점이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연습을 하는 데 가장 좋은 과목이 수학이라는 판단에서다. 학년별이 아닌 개인별 수학 실력에 따라 반이 나눠진다는 방식도 독특하다.
고민하는 과정에서 졸리면 편히 선잠을 자는 것도 허용됐다. 황 교수는 "학생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고도의 집중력을 유도하는 슬로싱킹(Slow Thinking)을 전문가의 지도를 통해 체험하면서 문제해결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라며 "경직된 상태에서 몰입이 가능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실상은 마음과 몸이 편안한 상태에서 이뤄지기 쉽다"고 강조했다.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은 평소와는 다른 교육방식에 낯설어했지만 금세 적응해나갔다. 이서진(춘천 우석중 1)군은 "수학 문제에 몰입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몰입 상황이 되니까 그 문제밖에 생각이 안 났다"며 "처음에는 몰입의 중요성을 의심했지만, 몰입을 통해 가치관이나 생각이 많이 달라진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이민구(서울 매원초 6)군은 "예전에는 문제를 보고 어렵다 싶으면 바로 답지를 봤는데, 이제는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고민을 많이 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밝혔다. 이건기(철원 김화중 1)군은 "노력하면 이 세상에 풀 수 없는 문제는 없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깨달았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황 교수는 몰입 경험이 청소년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두고 의도적으로 고민을 계속해 기어이 풀어내는 경험을 통해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며 "이러한 훈련이 반복되면 수학을 넘어 어떠한 문제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만의 문제해결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