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경기도 안성시의 한 중소기업에서 공청회가 열렸다. 경영난에 봉착한 중소 제조업체들이 작년 5월 공기순환기(환기장치) 제품을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해 달라'고 신청한 것에 대해 대기업들이 반기를 들고 나서자 중기부가 재심의에 나선 것이다. 대기업들은 최근 미세먼지가 사회문제로 대두하면서 관련 제품의 수요 증가가 예상되자 공공 조달시장 확대를 노리고 저지에 나선 것으로 중소기업들은 분석하고 있다. 중기부는 지난해 12월 5일 2019년부터 3년간 적용될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으로 중기부에 추천된 214개 제품 중 212개 제품을 지정했으나 공기순환기는 재검토에 들어갔다. 이에 중소기업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어려움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공기순환기 제품의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선정 타당성을 따져본다. 편집자 주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지정' 재심의 핵심은 자료 보완이다. 공기순환기가 경쟁제품으로 지정하기에 적합한지 판단하기 위해 중소기업 규모, 납품 중소기업 수, 매출액 규모 등을 따져봐야 한다. 중기부는 자료보완 과정에서 대기업들이 주장해 온 시스템 연계부문에 대해 ▲연계제품 및 상용화제품 확인 ▲연계의 범위 및 유기성 ▲기술수준 및 방식 등을 직접 확인할 방침이다. 공기순환기가 다른 공조제품과 별도로 독자적인 구매 여부 및 독자적인 설치·운영이 가능한지 여부 등도 파악 중이다.
공기순환기는 유사 中企간 경쟁제품인 공기조화기, 항온항습기, 팬코일유닛 등과 같이 조달청에 별도의 제품과 생산업체별로 등록돼 있어 개별 구매 및 설치, 독자 운영으로 가동되고 있다. 냉난방기는 온도 유지만 하고, 공기순환기는 환기하는 장치이기 때문에 냉난방기와 환기를 연계 통제해야 할 당위성이 없다는 것이 중소기업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각 실별 공조에 있어서 냉난방기는 자체 컨트롤러로 가동하고 공기순환기 역시 자체컨트롤러로 가동하고 있다.
공기순환기는 냉난방 된 실내공기를 환기하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폐열을 열교환으로 재활용하는 장비여서 실내공기 온도가 몇 ℃인지 인지할 필요가 없다. 일부 대기업 제품의 경우 자사 제품의 냉난방기와 공기순환기를 PC중앙제어로 연동해 관리하고 있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냉난방기와 중소기업 공기순환기가 별도로 관리되고 있어 굳이 연동 제어를 이유로 직접생산 확인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공기순환기 연계 필요성 전혀 없어
대기업은 "열회수 환기장치와 시스템에어컨을 연계해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고, 대기업 시장의 축소로 인해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된다"며 공기순환기의 '중소기업간 경쟁제품 지정'을 적극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들은 "열회수환기장치와 시스템에어컨 등 공조시스템이 별개로 납품되더라도 연계가 어려워지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현재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 열회수환기장치와 시스템에어컨이 별개 제품군으로 등록돼 납품되는 만큼 연계해 납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에너지절감을 위한 통합제어 측면에서도 이미 대기업이 자사 공조시스템과 중소기업의 열회수환기장치를 BEMS 등 연동제어 규격에 따라 연계 제어하는 상황이어서 시스템통합을 이유로 경쟁제품 지정을 문제 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술력에 대해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에너지절감효과에서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현재 에너지소비기기 등의 연계 또는 연동제어는 국가 에너지절감 주요시책으로 추진되고 있다. 여기에는 다수의 중소기업이 참여하고 있어 대기업만의 전문분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열회수환기장치의 열회수효율은 중소기업제품이 더 높고 가격도 저렴하다. 게다가 중기간 경쟁제품 제도는 100억원대의 관급공사에 불과하고, 약 2000억원 규모인 민간시장은 여전히 열려있는 만큼 민·관시장을 대기업이 독식하는 것은 무리다고 우려하고 있다.
◇공조시스템과 연계 공정경쟁 저해
중소기업들은 공조시스템과의 연계가 오히려 공정경쟁을 방해한다는 입장이다. 연계를 위해 두 기기 모두를 생산하는 기업이 PC중앙제어기로 연동제어해야 한다. 하지만 공기순환기를 특정회사 제품으로 통일시켜 판매하는 조건으로 납품할 경우 환기장치만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은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냉난방기와 공기순환기의 연계'는 냉난방기와 공기순환기를 모두 생산하는 기업에서 두 장비를 PC중앙제어기로 연동제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냉난방기를 생산하지 않는 중소기업은 '연계'라는 장벽에 막혀 경쟁에 참여하는 것이 원천 차단되게 된다.
실제로 2018년 3월 해군작전사령부가 전투력 복원시설 공사에 소요되는 EHP와 전열교환기(공기순환기)를 하나로 묶어 입찰을 진행했다. 그 결과 국내 대기업만 입찰에 참가함으로써 중소기업은 입찰참가 자격부터 원천차단 하는 폐단이 야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열회수환기협회 관계자는 "현재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의 부품을 받아 단순조립 하거나 완제품을 중소기업 하청으로 생산해 판매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하며 "자본력과 기술력으로 첨단제품을 생산해 산업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대기업들이 실제 기술개발보다는 조달청 공공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고 내다봤다.
: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제도
중소기업이 생산하는 제품 중 판로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품목에 대해 대기업의 공공 조달시장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는 중소기업이 10개 이상이고, 공공기관의 연간 구매실적이 10억원 이상인 제품에 대해 3년간 공공시장에서 대기업의 참여를 배제한다. 2006년부터 중소기업청장이 매년 지정한다. 중소기업에 적합한 업종과 품목을 선정,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역할분담을 유도함으로써 중소기업 사업 영역을 보호하는 제도다.